IT업계 종사자로서 온라인상의 작업들은 남들에 비해 꽤 수월한 편이었다. 브랜드명을 정하고 컬러와 폰트를 고르고 콘셉트를 만들어보는 등 오랜만에 뭔가를 만드는 일이 신나기도 했다. 스프레드시트에 작업일지와 해야 할 목록을 작성하면서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체에 흠뻑 빠진 느낌도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원했던 것일까?'
내면은 가끔 이렇게 질문을 해왔고 나는 그저 이 상황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원석 팔찌에서 여성 액세서리 편집샵으로 진화되었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데엔 모두 이유가 있겠지- 나는 그 끝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좋아하는 걸로 시작한다던데 나는 평소에 액세서리를 즐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심플한 반지나 목걸이 한두 개면 충분했고 귀걸이는 두꺼운 귓볼때문에 착용했다가 빼면 항상 진물이 났다. 이렇다 보니 슬그머니 걱정도 된다.
'이렇게 액세서리에 무지한 상태로 상품을 팔아도 되나? 뭐라도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뭘 알아야 덜 불안할 것 같았다. 초짜로 남대문에 갔다가 눈치 빠르고 약은 상인들에게 걸리면 된통 바가지나 쓰게 될 테니까.
마침 <주얼리 공예 창업 전문가 과정> 수업을 1:1로 진행하는 어느 공방을 찾았다. 바로 등록을 했고 3개월 간에 걸친 수업이 시작되었다. 소재별 특징, 본드 활용, 가죽과 매듭을 이용한 액세서리 제작.. 등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난생처음 접하는 세계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진실 하나가 밝혀졌다 - 나는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공방에서 배운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소재별로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금속, 도금과 경도에 따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등 실제로 도움 되는 정보를 많이 얻었다. 몇 가지 부자재만 있으면 간단한 수리도 가능하고 나만의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스킬도 생겼다.
공방 수업이 끝나고 여러 준비도 완료되던 시점에 정체기를 맞았다. 정체? 권태? 무기력.. 뭐라고 해도 좋다. 뭔가 갈 곳을 잃어버린 느낌, 내 안의 동력이 사라진 느낌, 왜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내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할 수도 없었다. 나를 스마트스토어로 이끈 지인은 여기까지 다 준비해놓고 왜 그런 거냐며 답답해했다.
원래의 내 성격을 타로카드에 비유하자면 메이저 7번 전차(The Chariot)에 가깝다. 집중해서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성취를 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타입이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업무를 처리했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는 게... 진짜 미치고 팔짝 뛰어도 부족한 심정이었다.
계속할 수도 그만 놓아버릴 수도 없는 상태. 그동안 준비하느라 쓴 돈도 있어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걸 중단했다.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로지 독서뿐이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빌려 읽었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때마침 엄마까지 병원에 입원하셨다. 침샘 옆에 혹이 자라고 있었는데 통증이 없어서 치료를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회복되는 몇 주간 엄마의 보호자로 병원에서 지냈다. 간이침대는 불편했고 엄마는 새벽에도 수시로 드레싱을 해줘야 하는 상황.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스마트스토어를 잊어도 되는 합법(?)적인 상황에 안도했다.
나는 스마트스토어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는데 정말 뒤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내가 이끄는 게 아니라 질질 끌려가는 형국에 스스로 의욕과 의지를 놓아버린 것 같았다. 몇 달간 상황은 지속되었고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