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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May 17. 2023

엄마 없는 아이들, 어쩔 수 없었던 최선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 '엄마 없는 아이들'


145

엄마 없는 아이는 사랑도 없으니까

말없이, 그저 말없이 바람 노래 들어보네.   

- 혜은이의 노래 <엄마 없는 아이>



150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152

과거에도 자신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왜 엄마가 갑자기 그 문제로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치는 일 같은 게 아닌가.






어쩔 수 없다는 것, 최선을 다한다는 것. 이 두 문맥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고,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의미니까.


1.어쩔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어.

2.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듣는 입장에서 어느 쪽이 나을 것인가. 별반 다를 바 없겠지만 어느 쪽이 덜 서운할까.


우선 1번은 어쩐지 비겁하게 들린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못 박고 최선을 다했다는 건 시도해 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한 것 같아서다.

2번은 그 반대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면 하늘을 원망할 일이다. 어구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어쩐지 다르게 와닿는다. 어쩌면 내 속이 뱅뱅 꼬인걸 수도 있다.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쳤다고 하면 별다른 속사정을 듣지 않더라도 납득이 간다. 그런데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를 버려야 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는 아니다.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는지.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그게 최선이었는지.


사실 사람마다 최선의 깊이는 다르기에 남들이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감당했을 거야.’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내 손을 놓았던 당신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사랑이란 처음에 떠올렸던 하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생겨도 네 곁을 지킬 거야, 네가 먼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야.>

그럼 세상은 그 마음을 시험하려고 온갖 일들을 벌인다. ‘과연 그럴까? 이래도 안 놓을 거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하면서.


바람에 쉴 새 없이 꺾이고 다시 일어서는 것, 겨울의 눈 속에서 봄을 품고 있는 씨앗처럼 묵묵히 버티는 것. 지구가 태양을 수백 번 공전하더라도 이 두 가지를 반복하는 것.

최선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사랑도, 주고 싶은 사랑도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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