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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란 일상성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것일세. 계시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다만 관찰하는 이성에서 행동하는 이성으로 뛰어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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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군, 모든 물체는 이동 중에 있네. 지구도 시간도 개념도 사랑도 생명도 신념도 정의도 악도, 모든 사물은 액상적이고 과도적인 것일세. 한 장소에 하나의 형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네. 우주 자체가 거대한 구로네코 택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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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것은, 지금 알려져 있기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이야. 그들은 동물의 창자를-때로는 인간의 창자를-꺼내서 그 형태로 운명을 점쳤지. 그리고 그 복잡한 형태를 찬양했어. 그러니까 미궁의 기본 형태는 창자야. 즉 미궁의 원리는 네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네 바깥 쪽에 있는 미궁의 성격과도 서로 통하고 있어.
그렇지. 상호 메타포. 네 외부에 있는 것은 네 내부에 있는 것이 투영된 것이고, 네 내부에 있는 것은 네 외부에 있는 것의 투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서 넌 종종 네 외부에 있는 미궁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너 자신의 내부에 세팅된 미궁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지. 그것은 대개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같은 모습, 같은 상태로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말은 내게 항상 위안이었다. 시곗바늘을 붙잡고 싶은 순간보다 빨리 지났으면 하는 때가 더 많아서,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다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들에게 있는 것이 나한테는 없어서, 지금만 지나면 달라지겠지 싶어서.
외로움의 파도가 밀려오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못 보면 죽을 것처럼 사랑해서도 아니고 호르몬이 미쳐 날뛰어서도 아니다. 그저 손을 꼭 잡고 길을 걷고, 라면에 계란을 푸느냐 마느냐로 투닥거리고, 저 옷이 내게 어울릴까 묻고, 어깨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떼어주고 싶은, 그런 존재가 그리워서다.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어 심장박동을 느끼고 손바닥 아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규칙적인 숨소리에 마음도 잠시 누일 수 있는...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이건 외로움을 피하려는 욕망이자 누군가를 통로로 채우고 싶은 욕망이구나. 나도 그저 그런 한 인간이구나.
내 마음은 늘 복잡한 미궁이었다. 단순하고 명쾌하길 바라면서도 복잡하고 모호한 형태의 미로.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고 채워질 수 없는 것들만 골라 채우고 싶어 하는 모순 덩어리. 그래서 호기심을 못 이겨 외부의 미궁에 겁 없이 발을 밀어 넣곤 했다. 나 자신의 내부로 푹 찔러 넣는지도 모르고.
늘 그랬듯 앞으로도 파도를 막을 수 없고 바람을 막을 수도 없다. 바람을 맞고 파도에 흠뻑 젖어서 미궁을 헤매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을까. 우주가 거대한 택배라면 이미 정해진 목적지로 배송되겠지. 이왕이면 내가 깜짝 놀랄만한 곳이었음 좋겠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말했던 지후아타네호 같은 곳, 기억이 멈추는 곳.
♪ '야상곡 - 김윤아' 들으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