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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rpose is Love Jun 20.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습니다

[가이드 리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전하는 사랑의 의미



만날 때 헤어질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결국 어떤 식으로든지 끝을 맺습니다. 

처음의 설렘, 그리고 같은 미래를 꿈꾸는 수많은 바람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저물어 가 단순하고도 수많은 의미를 담은 '이별'이라는 단 한마디로 안녕을 말합니다.

 

어차피 지나가버릴 행복지나가버릴 마음. 그렇게 지나고 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모든 것이 흩어진다는 걸 잘 알면서도,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 걸까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헬퍼봇'이라 불리는, 수많은 지식과 기능 더 나아가 인간의 감정까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입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들은 수명이 다할 때가 되면 주인을 떠나 헬퍼봇 아파트로 이주해 수명이 끝날 때까지 혼자서 생활합니다. 올리버와 클레어도 홀로 방 안에서 수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서울 메트로폴리탄 시티의 수많은 헬퍼봇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문을 클레어가 두드립니다. 충전기가 고장 나 도움을 청하려 이곳저곳 도움을 요청했지만 유일하게 올리버만이 클레어를 돕고, 둘은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들어줍니다. 

두 로봇에게는 같은 꿈이 있었습니다. 올리버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주인이었던 제임스를 찾고 클레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반딧불을 찾으러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합니다.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둘은 무작정 제주도로 떠납니다. 

 

제주도로의 여정을 함께하며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 의지하고 받쳐줍니다. 혼자 지내 온 시간이 길었기에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예쁜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로봇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연인인척 어색한 연기를 하기도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고 또 나쁘지 않다고 여깁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함께, 함께 있다는 게...

- 클레어가 부르는 노래, ‘생각보다 생각만큼’ 중에서



헬퍼봇은 자율적인 사랑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너무 많은 오류와 문제들을 일으키기기에, 명령을 받고 정확하게 수행해야 하는 로봇에게는 불필요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 동안 행복이나 설렘이라는 말로 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일까요. 클레어는 올리버에게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하며, 그렇게 하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거라 말합니다. 비록 로봇일지라도,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사랑해도 좋을 일인데 왜 클레어는 사랑이란 감정을 거부하는 걸까요.


제주도에 도착해서 올리버는 그렇게나 만나고 싶었던 전 주인 제임스의 집을 찾습니다. 올리버의 기억 속 

제임스는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주었던 다정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올리버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제임스가 자신을 반겨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임스의 집으로 떠나려는 순간, 클레어는 말합니다. 거기 가면 상처받을 거라고. 사람은 변하고,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향하는 마음도 변한다고. 그래서 올리버가 그토록 바라던 제임스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고.

사랑을 굳게 맹세하던 말들은 결국 차갑게 변하고 처음의 그 마음은 보살피지 않은 화분처럼 시들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클레어는 잘 알고 있습니다. 클레어에게 사랑은, 아픔과 절망과도 같은 것입니다.


올리버는 클레어의 만류에도 제임스를 찾아가지만 제임스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아무도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올리버는 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생의 마지막에서도 올리버를 생각하고 함께 듣던 LP판을 남겼습니다. 제임스는 이 세상에 없지만, 올리버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올리버의 가장 친한 친구, 제임스



제임스가 남긴 LP판을 보며 클레어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고백합니다.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음을 제임스를 통해 알게 되고 올리버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클레어의 위로에 올리버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제임스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클레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반딧불을 보러 떠납니다.



조심조심 네가 편하게, 언제까지고 널 붙잡아줄게

- 올리버와 클레어가 부르는 노래, ‘반딧불에게’ 중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을 보며 올리버와 클레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그 무엇이, 둘의 마음 안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갑니다.


다시 서울로 온 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합니다.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둘이지만, 함께했던 순간들이 기억나고 자꾸만 서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이란, 멈추려 해봐도... 바보같이 한 사람만 내내 떠올리게 되는 것.
사랑이란 그리움과 같은 말.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은 많겠지만 누군가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면, 그 사람의 몸짓 하나, 목소리 하나, 눈빛 하나 모두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리버와 클레어도 그렇게 서로를 마음에 품었고,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이게 사랑인건가봐...

- 올리버와 클레어가 부르는 노래, ‘First time in love’ 중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올리버와 클레어. 하지만 둘은 수명이 다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로봇입니다. 클레어는 조금씩 기능이 정지되어 가고, 그런 자신때문에 힘들어 하는 올리버를 보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 사랑을 멈추고 원래대로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함께했던 기억까지 지워버리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올리버는 자신은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클레어를 보살핍니다. 클레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고 언젠가는 끝나게 될 사랑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 맹세합니다. 클레어도 올리버와 끝까지 함께하기로 맹세합니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올리버와 클레어가 부르는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하지만 둘은 결국 기억을 지우기로 합니다.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예쁜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사랑하기에 더 이상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흔적과 기억을 모두 지웁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만나서 추억을 쌓고 사랑에 빠지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만나기 이전으로 메모리 초기화를 한 둘. 또 다시 시작된 챗바퀴 같은 일상.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다시, 클레어가 올리버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방문을 열어 클레어를 맞아 충전기를 고쳐줍니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시선을 나누고, 무대는 막을 내립니다.



사랑은 정말이지 아픈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우리들의 마음도 변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변해버린 사랑이 좋은 결말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행복을 얻고, 누군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았던 

올리버의 방문을 클레어가 두드려 꿈꿔왔던 제임스를 만난 것처럼, 클레어가 올리버와 제임스의 인연을 통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찾은 것처럼, 그리고 서로를 마음에 품고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사랑 가득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 없이 문을 두드려 인연을 잇고 추억을 만들고 사랑해야 합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을 멈추기에는 아직 맞이하지 않은 엔딩이 어떤 내용인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엔딩은 '해피엔딩'일지도 모르니까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연말에 초연의 막을 연,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입니다.

정욱진, 전미도, 김재범, 이지숙 배우 등의 열연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고 매 회차 만석을 기록했으며,

'제 3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즈'에서 각 종 상을 휩슬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작년 11월 짧은 앵콜 공연이후 소식이 없다가 최근 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며 올 연말에 재연 소식을 알렸습니다.

리뷰에서 다 밝히지 않은 더욱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작품으로 한 번쯤 꼭 보시길 추천 드리며, 

올리버, 클레어를 통해 사랑의 가치를 듬뿍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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