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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ul 07. 2021

아이와 하는 여행은 어린 나와 하는 여행

아들과 둘이 제주 여행 31화. 카약 타고 토끼 보고

"아빠, 내가 앞에 앉을게, 노도 내가 저을게. 아빠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신이 난 아들의 목소리는 반 박자 빨랐다.

"어, 알았어, 아빠는 진짜 가만히 있는다." 노를 몇 번 젓다가  "이제 아빠가 저어 힘들어"라고 말할 아들이었지만 이제 혼자서 충분히 노를 저을 만큼 자랐다.

카약과 카누는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가 타는 카약은 양날 노를 사용하고 카누는 덮개가 없고 외날 노를 사용한다. 선수나 취미로 하는 사람이야 둘의 구분이 필요하지만 나처럼 1년에 한두 번 여행 갔을 때나 타는 사람은 둘의 구분은 의미 없다. 어디 퀴즈대회에 나가면 모를까? 그런 대회에서도 문제로 나올 확률은 아주 낮지만.


처음 카누인지 카약인지를 봤을 때는 2015년쯤 춘천에 여행 갔을 때다. 그때는 동료들과 함께였는데, 그걸 보자마자 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이제부터는 그냥 구분하지 않고 카약이라고 하겠다. 카약이라는 이름이 조금 더 마음에 들어서다. 카약을 보자마자 정글 속 호수에서 웃통을 까고 노를 젓는 원주민이 생각났다. 그다음에는 똑같이 맨몸으로 더 넓은 강물의 물살을 헤치며 노를 젓는 카약 선수들이 떠올랐다. 노를 젓는 원주민과 선수 모두 노를 저을 때마다 알통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이토록 카누는 그 어떤 놀이보다 남성미 넘치게 다가왔다. 춘천에서 물레길을 탔을 때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없는 알통조차 꼭꼭 숨겼지만, 언젠가는 위통을 깐 채 누군가와 제대로 된 레이스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누군가가 아들은 아니었다. 아들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  


그해 나는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아이들과 카약을 탔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송도의 센트럴파크도 그만큼 멋지지 않을까 싶었다. 센트럴파크를 한글로 바꾸면 중앙공원이 되는데, 희한하게도 어디에나 있는 중앙공원은 평범하다. '화장발'처럼 '이름발'도 있어서겠지요? 우리가 카약에 올랐을 때는 7월 초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었다. 넘어가는 햇살은 우리를 은은하게 비추었고 나는 호수의 물을 한 움큼 쥐어 두 아이에게 뿌렸다. 갑작스러운 물 공격을 받은 아이들도 물을 움켜쥐려고 했다.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움직임에 카약이 휘청거렸다. 카약이 뒤집어지면 영원히 남을 추억이 되지만, 찝찝해지고 싶지 않았다. "서영아 서준아 그만그만"

아이들은 아빠에게 물 공격을 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오늘 내가 아들에게 그때처럼 물을 뿌리면  아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아빤 나빴어! 흥" 웃음이 스며 나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한 해에 한 번은 레일바이크를 탔다. 레일바이크를 타다 보면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곳이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각종 포즈를 취한다. 바이크를 다 타고 나오면 찍은 사진이 눈앞에 떡하니 있다. 그걸 사지 않고 벗어나기란 참말로 어렵다. 레일바이크를 탈 때마다 사진을 사고 집에 돌아와서는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한 해가 갈수록 사진이 하나씩 늘어났다. 레일바이크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다. 해마다 덩치가 불어나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매일매일 볼 때는 성장의 속도가 나무늘보 같지만 1년 전의 사진, 2년 전의 사진을 보면 어느새 이만큼 자랐나 싶어 놀란다.


아이들과 두 번째 카누를 탔을 때는 2018년 괌 여행에서다. 열두 살 딸은 지금 열한 살인 아들처럼 자기가 노를 젓는다고 했다.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뒤집히지 못한 경험을 괌에서 했다. 카누 위에서 장난을 쳤다. 우리가 탄 카누는 휘청이다 뒤집어졌고, 우리 가족 모두는 물에 빠졌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다행히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찝찝할 리 없었다. 물놀이를 하고 카누를 타며 장난을 치고 웃음을 뿌렸다.


내 머릿속에 괌의 풍경이 춤을 추는 동안 아들은 열심히 노를 저으며 우리 앞에 가고 있는 카약을 따라잡고 있었다. 앞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친구 사이로 보이는 두 젊은 여인이었다. 여자들끼리 카누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조금은 놀랐다. 용기 가득한 그녀들이 특별하게 보였다. 나중에 아들이 자라면 이런 말을 해줘야겠다. "아들아, 배우자를 선택할 땐 용기 있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  

앞 카누를 열심히 따라가던 아들이 나를 돌아보며 웃는 모습으로 말했다. "아빠, 추월하자"

"서준아, 약속이랑 다르잖아. 얼마 오지도 않았어" 장난 반 농담 반으로 아들을 놀렸다.

아들은 나를 보채면서 그저 웃기만 했다.


아빠 찬스를 쓰니 보여줘야 했다. 아들은 인생을 통틀어 카누를 몇 번 타지 않지만 나는 여행하다 카누만 보이면 타는 사람이라 능숙했다. '게 섰거라'를 외치며 쏜살같이 달렸다. 우리를 바라보던 그녀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우리는 보란 듯이 그녀들을 지나쳤다. 아들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일렁였다. 뒤에서 용감한 여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빠르다."

그 순간 춘천에서 다짐했던 '언젠가는 레이스를 할 상대'가 정해졌다. 아들이었다. 정글 속 원주민이나 선수처럼 상의를 벗은 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물살을 가르면 재밌고 멋질 것 같았다.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래의 모험과 여행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근댄다.


용감한 여인들을 지나쳐왔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빨리 가려는 마음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분에 취했다. 아들은 추월해서 나는 아들이 좋아해서. 그 순간 위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기쁨에 취한 우리는 물 폭탄을 피하려고 했으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물은 우리를 시원하게 적셨다. "아빠, 옷 다 젖었어. 팬티까지"

"진짜네, 괜찮아. 밖에 나가면 금방 마를 거야"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에 앉은 아들의 엉덩이와 내 다리는 가까웠는데 하필 물이 떨어진 곳이 아들의 엉덩이와 내 발 근처였다. 나는 신발과 바지 끄트머리가 젖었고 아들은 빤스까지 홀라당 젖었다. 재미가 찝찝함보다 컸는지 아들은 투덜대지 않았다. 제주의 오월, 오후 두 시가 우리를 적당히 데웠고 시원한 물은 우리를 적당히 식혔다.


아들은 다시 노를 저었다. 나는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씩 늘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는 나보다 잘하는 것도 많고 내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어린 아들에게 이것저것 하자고 하는 것처럼 세월이 한참 흐른 훗날 아들도 나에게 이것저것 하자고 하면 좋겠다. 아들의 뒷모습이 어느 날 보다 듬직해 보였다. "서준아, 너도 나중에 자라면 아빠에게 좋은 곳 많이 데리고 다녀야 한다. 알았지?"

열심히 노를 젓는 아들은 나를 보지도 않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나중에 너 어른 되면 아빠 좋은데 많이 데려달라고오"

"아, 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아들의 짧은 대답은 어떤 말보다 나를 들뜨게 했다.   


카누를 타러 갔는데 카누만큼이나 아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식당에 가서 메인 요리에 따라 나온 밑반찬이 더 맛날 때가 있는데, 토끼를 본 아들의 눈이 그 상태가 됐다. 누군가 토끼에게 풀을 주고 있었다. 아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열심히 풀을 뜯어 토끼에게 주었다. 토끼는 풀을 어찌나 잘 먹고 아들의 손은 또 얼마나 작은지, 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와주고 싶었다. 누구보다 큰 손인 나는 풀을 한 움큼씩 뜯어 아들에게 안겼다. 자기 머리만큼 많은 풀을 본 아들은 방긋 웃으며 놀라워했다. "우와, 이거 뭐야? 아빠 이거 어디서 났어?"

아들의 눈에는 토끼가 보였지만 내 눈에는 풀이 보였다. 토끼에게 풀을 먹이는 아들이 귀여웠다. 아들의 모습에서 어린 나도 살짝 보였다. 아들과의 여행은 어린 나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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