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매 공원에서 나온 우리는 스쿠터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그래 봤자 시속 50km 내외였지만 불어온 바람에 온몸이 시원해졌고 속도감은 하늘처럼 높아졌다. 창이 없는 스쿠터는 제주도의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안겼다. 서점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분위기가 느껴졌다. 학교가 하나씩 나타나며 제법 큰 동네임을 알렸다. 횡단보도 앞에 멈췄을 때다. "아빠, 저기 봐. 축구장 짱 멋져. 우리 축구하면 안 돼?"
자연스럽게 내 눈은 아들이 가리킨 쪽으로 향했다. 잘 가꿔진 축구장이었다. 서울에도 저렇게 멋진 축구장이 있지만, 대체로 이런 팻말이 우리를 막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하지만 제주는 달랐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축구공만있다면...
"서준아, 축구공이 없는데 어떻게 축구를 하지?"
"..."
11시 1분, 우리는 제주도 한경면에 있는 동네 책방 무명서점에 도착했다. 책방은 닫혀 있었다. <OPEN 오후 1시>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당황스러워 한숨이 나왔다. 발을 동동 구르는 대신 주인장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사장님이죠? 서점에 왔는데 문이 닫혀있네요. 정말 1시에 문을 여나요?"
주인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목소리는 친절했다. "네, 혹시 식사를 안 했으면 식사를 하시고 오면 좋을 텐데요."
나는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리는 이미 무엇을 할지 결정한 상태였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여기 근처 문구점 있나요?
"네 거기서 양복점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1시에 다시 들를게요."
축구공을 사서 축구를 할 생각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고, 아들과 여행지에서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았다. 책방 주인장이 말한 대로 갔으면 문구점을 금방 찾았을 텐데 괜히 내비게이션을 믿는 바람에 조금 돌아 문구점에 도착했다. 사람보다 기계를 믿은 내게 하늘이 내린 꿀밤이었다. 시골 문구점은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사장님도 그때처럼 다정다감한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 축구공 있어요?" 사장님 대신 아주머니라 불렀다. 어릴 때 문구점 사장님을 그렇게 불러서였다.
"예~ 있지요." 아주머니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잠시 뒤 아줌마는 축구공을 들고 왔다. 축구를 하기 어려울 만큼 허접하거나 한 번 쓰기에는 아까울 만큼 비싸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축구공을 보고 만졌다. 축구하기에 괜찮았다.
"아주머니 얼마예요?"
"만 오천 원요."
가끔 시골 문구점이나 슈퍼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덤터기 씌우는 경우도 있는데 아줌마는 표정만큼이나 정직하고 마음이 후했다. 카드 대신 현금을 내며 웃음도 함께 드렸다. 아주머니는 축구공에 바람을 넣으며 아들에게 질문을 하고 칭찬을 했다. "너는 이름이 뭐니? 아빠랑 여행 다녀 좋겠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런 여행은 상상도 못 했는데, 좋겠다. 너 참 씩씩하구나. 아빠랑 축구 재미있게 해"
아들은 쑥스럽고도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니예~~"
축구공을 받은 아들은 싱글벙글했다. 스쿠터를 타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축구장으로 갔다. 여행 중 축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자동차 안에는 축구공이 항상 있고 어디든 축구할 만한 곳을 만나면 축구를 한다. 아들은 매주 한 번 축구를 하는데 어쩌다 주말 일정이 생기면 아쉬운 마음을 온 얼굴에 그리고 한동안 웃음을 잃는다. 그러니 아들이 제주도의 어느 멋진 축구장을 만났을 때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해졌을지, 나는 바로 이해됐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야기하면 아들과 함께 월드컵 결승전을 보는 것이다. 한국이 결승전에 오르는 날이 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한 번은 꼭 할 생각이다.
축구장은 천연잔디였다. 땅에서 하는 축구가 여행에서 민박을 이용하는 거라면 천연잔디에서 하는 축구는 오성급 호텔을 이용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넓은 축구장에서 1 대 1로 경기했다. 더 많이 달려야 해서 더 빨리 지쳤지만 아들과 나는 한 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래야 아들이 더 즐거워한다. 사이좋게 한 골씩 나누었다. 20분쯤 했을 때다.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느라 한참을 뛰어다니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우리 승부차기하자!"
아이들과 놀 때 부모에게 가장 유리한 놀이가 병원놀이이듯 축구 경기를 할 때 부모에게 가장 유리한 종목은 승부차기다. 가만히 서 있다 공을 막고 가만히 서있다 공을 차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승부조작도 쉽다. 나의 승부조작은 처음부터 시작됐다. 아들이 한 골 넣으면 나도 넣고 아들이 실패하면 나도 실패했다. 승부는 언제 끝날지 도무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축구장 바깥으로 향했다. 축구장 바깥에는 트랙이 있었다. 문득 아들과 달리기 레이스를 하고 싶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 우리 가족은 봄가을에 한 번씩 5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함께 달리며 건강도 확인하고 소풍이나 운동회의 즐거움도 누린다. 아이들이 어떻게 5km를 달리냐고 묻는다면, 달리기에 빠진 아빠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대답할게요.
트랙에서 한 바퀴 레이스를 하자고 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그럼 한 번씩만 더 차자"
우리는 한 번씩 더 찼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승부를 끝낸 아들은 승자의 여유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나는 우리가 달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한쪽에 설치하고 아들과 출발선에 섰다. 아들은 인코스, 나는 아웃코스. 나의 출발 신호와 함께 우리는 열심히 달렸다. 50미터를 지나며 아들은 조금씩 쳐졌다. "서준아. 멈추지 말고 끝까지 달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나는 아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씩 속도를 낮췄다. 그리고 곡선 코스를 달리는 순간, 아들이 나를 앞질렀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내가 졌다. 아들이 인코스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고 이미 승부는 기울어진 상태라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길 수는 없었다. 달리기도 내가 졌다.
최선을 다한 아들은 양손을 무릎에 얹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그건 최선을 다한 자의 모습이었다. 아들이 무척 기특했다. 드디어 고개를 든 아들이 물었다. "아빠, 누가 이겼어?
"니가 이겼어" 나는 아들의 손을 힘차게 들어주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농구를 하자고 했다. 축구공으로 농구를 했다. 아들은 아직 농구를 해본 적이 없으니 초보다. 드리블부터 피벗과 패스까지, 하나씩 가르쳤다. 시간이 흐르며 처음보다 조금 나아졌다. 그 정도면 괜찮았다. 앞으로 잘할 일만 남았다. 초보자는 늘 어리바리하다.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다. 오늘 나보다 더 잘 달린 아들도 걷기는커녕 천장만 바라볼 때가 있었다.
축구와 농구를 재미있게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축구공에 바람을 빼지 않으면 스쿠터에 넣을 공간이 없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서준아, 문구점에 가서 바람을 빼면 가져가고 못 빼면 착한 문구점 아주머니에게 드리고 가자" 만 오천 원은 둘이 영화 보는 값보다 쌌다. 우리는 1시간 이상을 즐겼고,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이런저런 좋은 말과 칭찬을 했었다. 아주머니께 드려도 남는 장사였다.
잠시 뒤 우리는 문구점에 도착했다. 아주머니가 우리의 문제를 가볍게 해결했다. 직접 핀으로 바람을 빼주기까지 했다. 아주머니의 정감 가득한 모습이 무척 고마웠다. 서점에 왔다가 뜻밖에 만난 사람의 온기로 여행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