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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un 06. 2021

아들과 아빠의 스쿠터 타고 제주 한 바퀴 여행

8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

2018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충무로에서 뮤지컬 영화 <손에 손잡고>를 봤다. 88 올림픽을 주제로 한 다큐영화였다. 영화는 나를 30년 전 열한 살 소년으로 바꾸었다. 88 올림픽의 명장면들은 어렸을 때 추억을 살리기에 충분했다. 한창 영화에 빠졌을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기를 보니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고향 친구였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내다. 우짠 일로 전화했노?"

"아 그냥 했지. 니 어디고? 내 서울이거든" 하회탈처럼 순박한 친구가 말했다. 친구는 웃지 않았는데 그를 떠올리는 나는 웃고 있었다.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친구를 만나기로 한 익선동으로 갔다. 서울에서 한창 뜨고 있던 그곳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지만 어색함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없었다. 그의 하회탈 얼굴은 여전했다.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익선동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대구에선 볼 수 없는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골목길을 한 바퀴 둘러본 친구가 네 글자를 연거푸 토해냈다. "서울 좋네", "서울 좋네", "서울 좋네"

나는 네 글자를 한 번만 말했다. "역시 촌놈"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한 공자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행을 떠나면 꼭 현지에 있는 친구를 만난다. 나도 그들에게 반가운 친구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주도에 도착해서 나보다 몇 살 위인 동호회 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부터 4박 5일간 제주여행을 해요. 시간이 되면 식사라도 같이 해요." 답이 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봐요. 숙소가 어디예요? 거기로 갈게요."

저녁 식사를 호텔 식당에 미리 예약했었다. 취소를 하려고 전화했지만, 당일 취소는 안 된다고 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셋이서 바비큐를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전화해서 인원 추가를 하고 형에게도 전화를 해서 호텔에서 먹자고 했다. 그는 저녁 6시쯤에 온다고 했다.


야자수가 있는 함덕 해변에서 '아들과 둘만의 제주 여행'이란 그림을 막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를 찾아온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아들과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는 나를 향해 싱긋 웃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서준아 안녕, 잘 지냈어?"

작년 겨울, 두 아이(딸과 아들)와 함께 제주 여행을 했을 때도 그를 만났었다. 아들과 형도 구면이었다. 아들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멀리서 온 만큼 더 반갑고 좋았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로는 고작 1시간이지만, 심리적 거리는 하염없이 멀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이니까.


동네 달리기 동호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그 당시 동호회에서 가장 잘 달리는 사람이었다. 나와 그를 잇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요일에는 달린 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는데, 그는 언제나 곧장 집으로 갔다. 누군가와 떠드는 것보다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몇 년 뒤 그는 제주로 이사했다. 더덕 농사를 지을 거라고 했다. 그와의 인연은 그것이 끝인 줄 알았다. 각자의 인생에 스치듯 지나는 인연일 줄 알았지만, 인스타그램이 우리의 인연을 이어주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포스팅하지는 않았고 눈팅만 했다. 내가 올린 포스팅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눌렀다. 그건 호감의 표시였다.


몇 년 뒤 나는 어쩌다 가입한 그 동호회에서 회장을 하게 됐다. 젊으면 동호회도 더 열정적으로 이끌 거라는 회원들의 근거 없는 희망 덕분이었다. 어느 날 집으로 택배가 왔다. 한라봉 두 박스와 더덕 한 박스였다. 메모지에는 짧은 글이 써져 있었다. "한라봉은 회원들과 함께 드시고 더덕은 막시님 가족과 함께 드세요." 더덕은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되어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감동했다. 더덕을 흙이 묻은 채 보냈다면 그를 오히려 싫어했을 수도 있다. 손질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니까(^0^). 그에 대한 호감도가 천정을 뚫었다. 누군가의 호감을 사는 건 아주 어려우면서도 쉽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가진 걸 나누면 되는 것, 이것이 어려우면 타인의 마음을 얻기 어렵고 쉬우면 타인의 마음을 얻기가 식은 죽 먹기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제주 흑돼지 오겹살은 노릿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소주를 주문했다. 제주도에선 '한라산'을 마셔야 한다. 21도 한라산 병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한라산은 제주 4.3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무차별로 학살한 사건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다. 워낙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 제주 도민 중 4.3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학살할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떤 이유라도!


한라산 병에는 동백꽃이 그려져 있었다. 작년 겨울 두 아이들과 제주 여행을 했을 때 카멜리아 힐에서 인생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역사에 어설픈 관심이 있는 내가 물었다. "동백꽃이 여기 왜 있죠?" 이젠 제주도민이 된 그가 말했다. "동백꽃은 4.3 사건에서 희생된 영혼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누군가 내 마음에 돌을 던진 듯 출렁였다.


아들은 살아있는 역사를 듣고 있었다. 아들의 눈은 '아이들이 여자들이 노인들이 왜 죽었나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알려줘야 할 역사다. 잠깐 무거워진 마음을 다시 끌어올린 건 우리 둘의 관심사였다. 그와 나는 둘 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나에게 함덕에서 달릴 코스로 서우봉을 추천했고 애월 해변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다음날 서우봉은 최고의 일출을 선사했고 여행의 마지막 날 애월 해변에서는 평탄한 코스를 달릴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달리기 정보를 알려줬지만, 현지인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여행정보는 식당이 아닐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아닌 현지인이 찾는 진짜 식당 말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니까 식당 물가가 꽤 비싸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면 제주도민에게 식당을 추천받길 바란다. 나는 첫날 저녁을 제주도민이 추천한 횟집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인생이나 여행이나 내 맘대로 되면 그건 인생도 여행도 아니다.


우리 둘이 소주잔을 부딪히는 동안에도 아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어졌다. 반은 칭찬이었고 반은 질문이었다. 학교는 잘 다니냐? 여행은 재미있냐? 무엇을 좋아하냐? 여자 친구는 있냐? 스쿠터는 재미있냐? 초등학교 4학년에게 할 만한 질문이었다. 고기 잘 먹는구나, 아빠 말 잘 듣는구나, 아빠가 든든하겠다. 엄마가 뿌듯하겠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할 만한 칭찬이었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칭찬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을 감췄지만, 속으로는 웃으며 뿌듯했을 것이다. 왜냐고? 나도 그랬고 그대도 그랬으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과 칭찬으로 더 멋진 아이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자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와 아들을 기분 좋게 한 그는 헤어지기 전에 한라봉 파이와 우도땅콩 초코바를 한 박스씩 사서 아들의 가슴에 안겼다. 아들은 함박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루가 지났는데 짐이 불었다. 스쿠터에 그 과자를 넣을 공간이 없었다. 다 먹을 수도 없었다. 입은 옷과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에 필요 없어진 두꺼운 옷을 서울로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과자 두 박스와 각종 물건을 챙겨 우체국으로 갔다. 여행을 하며 집으로 택배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종종 해야겠다 싶을 만큼 훌륭한 선택이었다.


7시 40분쯤 됐을 때 그와 헤어졌다. 아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목욕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들은 유난히 목욕을 좋아하는데, 코로나로 목욕탕에 가지 못한 지 1년 반이나 됐다. 연인들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 가격은 꽤나 비쌌지만, 나는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과감히 투자를 했다. 그건 여자 친구를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의 수작이 아니라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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