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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Aug 01. 2021

성형과 글쓰기는 반대다.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글쓰기의 진리다 -<문장강화>에서 이태준-

학교 다닐 때 그림은 지지리도 못 그렸다. 초등학교 때는 '미'를 벗어나지 못했고 중고등학교 때도 그와 비슷했다. 중학교 때 딱 한 번 A를 받은 적이 있다. 연 만들기를 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모양은 보지 않고 오로지 잘 날리는 것만 보고 점수를 매기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채점방식이었지만 나는 쾌재를 불렀다. 예쁘게 만드는 건 못해도 잘 날리는 건 내 전문이었으니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미술을 하면서 받은 유일한 A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면 하나같이 못난이였다. 덧칠을 했다. 그럴수록 그림은 더 이상해졌고 급기야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 되었다. 시간이 좀 남아있으면 찢고 하얀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렸다. 그런다고 잘 그려지는 건 아니었지만.


어른이 되어 성형한 사람을 종종 만난다. 누구나 성형을 한 번 하면 예뻐진다. 성형수술을 했니 뭐니 말해도 예전보다 호감이 가고 인기도 좋아진다. 그런데 한 번 더 하면 조금 이상해진다. 몇 번 더 고치면 목 늘어진 티셔츠처럼 사람이 이상해진다. 주위에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돌아서면 다 욕한다. 그러니 여러분! 성형을 할 거라면 딱 한 번만 합시다.


얼마 전에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었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글쓰기는 그림과 성형과 반대였다. 그림과 성형은 횟수를 더할수록 못난이가 되지만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예쁜이가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퇴고를 몰랐다. 글을 그냥 한 번에 끝내고 오타가 없는지만 확인하는 것을 퇴고라 여겼다. 보고서나 보도자료를 위에다 보고하면 어김없이 빨간 줄을 봐야 했다. 나는 이렇게 합리화했다. '어차피 글이라는 건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달라서 그런 거니까 고쳐 쓰는 게 뭐 별거 있겠냐? 마음에 안 들면 알아서 고치겠지' 실제로 맞는 말도 있었다. 팀장이 고친 글이 국장에게 올라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고칠 게 많다. 내가 처음 낸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낸 두 번째 책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도 고치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왜 그럴까? 똑같은 뜻을 지닌 문장이라도 고칠수록 매끄러워지고 생동감 있는 단도 생각나기 때문이다. <문장강화>의 글을 인용한다.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글쓰기의 진리다" 나도 저자 이태준의 말을 적극 지지한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초고를 그대로 올린다. 고치면 좋아지지만 그대로 올리는 이유는, 나는 여기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때로는 오타가 보이고 때로는 문장을 통째로 덜어내고 싶어 진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고치지만 대부분 그대로 둔다. 이유는 있다. 블로그나 브런치 글이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쓴 글을 책으로 내거나 어딘가에 제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몇 번이나 고친다. 그냥 제출하기엔 너무나 부끄럽기 때문이다. 적절하지 않은 단어,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비문도 많다. 한 번 보는 것보다 두 번 보면 글은 더 나아진다. 횟수를 더할수록 글은 더 좋아진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그럼 언제까지 고쳐야 해?"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시간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까 더 이상 글을 더 보면 토할 것 같을 때까지? 나는 아직 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글이 지겨워 더 보고 싶지 않을 만큼은 봤다.


내가 글을 쓰는 단계는 이렇다. 에세이에 한정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쓰려고 하면 한 문장도 쓸 수 없으니 처음에는 그냥 막 쓴다. 써야 하는 양만큼 쓴다. 그리고 주제를 담는다. 시간의 흐름에만 맡기면 신변잡기의 글이 되어 아무에게도 감흥을 줄 수가 없다. 주제를 담으면 버려야 할 글과 새로 끌어와야 할 글이 생긴다. 그걸 몇 번 하다 보면 글의 틀이 잡힌다. 이젠 글을 생동감 있고 멋지게 꾸며야 한다. 화장을 하는 단계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신경 쓴다. 비문이 있나 없나와 문법에 맞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글이 지겨워질 때까지 읽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그럼 만족스러운 글이라 생각해서 발행 또는 제출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긴다. 발송하자마자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그 단어 바꿨어야 하는데... 제. 기. 랄!'


이 글도 초고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은 초고다. 활어처럼 살아있지만 누군가에게 제대로 내놓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런데 글 이웃이나 네티즌들은 글이 이렇니 저렇니 평가하지 않는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 글이 초고이지만, 아무튼 도움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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