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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Feb 27. 2023

여름은 곧 이름이었다

지난 여름을 그리워하며

 오렌지를 발음할 때 ‘오랜’이라는 관형사가 좋다. 오랜 관계, 오랜 시간, 오랜 마음 등 오랜의 다음 말에는 대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붙는다. 우울, 짜증, 기다림과 같은 부정적임이 뒤따를지라도 켜켜이 쌓인 오랜의 흔적과 분위기가 왠지 모든 것을 포용할 것만 같다. 이미 지나온 긴 시간은 그 자체로 애정이 되기에. 묵직하고 단단한, 그러나 사르르 쉽게 씹히는 시트는 왠지 추억과 닮아 있다. 떠올리면 먹먹하지만 금세 사라지고 마는. 그래서 파운드케이크처럼 먹먹한 디저트를 먹을 때면 오랜 시간들을 반추하게 된다. 나의 유년 시절과 어린 시절,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 사회 초년생이었던 시절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간의 집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여름에 먹었던 오렌지 파운드케이크

 유년 시절의 기억이 유독 어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주로 낯선 곳으로 국내 여행을 떠날 때다. 작년 여름, 바다가 있는 남쪽 도시에 다녀왔다. 동서울터미널 역에 도착해 마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려 승차장으로 향했다. 달리는 KTX에서 잔잔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도로 위를 덜컹거리는 느낌도 좋다. 산 능선과 색을 입은 저마다의 지붕, 이따금 전봇대와 그 양옆을 가득 채운 나무들, 비닐하우스와 논과 밭, 전광판 보는 것을 좋아한다. 출발 시각이 되었는데도 버스 안에는 나뿐이었다. 곧 기사님이 버스에 오르셨고 나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아 그의 출발을 기다렸다. 버스는 제시간에 출발했고 나는 종종 덜컹대며 창 밖의 풍경들을 관람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에서는 기사님께 드릴 음료수와 내가 먹을 호두과자를 샀다. 당시만 해도 고속버스 내에서 잠깐의 취식이 가능했던 터라 호두과자를 후다닥, 야무지게 먹었다. 동그랗고 따끈따끈한 호두과자를 씹으며 휴게소를 오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휴게의 의미답게 잠깐의 휴식을 깊게 취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 안에서 그들의 걸음걸이와 입모양, 손동작과 더위를 표하는 두 미간을 번갈아 둘러보며 마실 것도 없이 호두과자를 꾹꾹 잘도 먹었다.

 

수퍼마켙 간판

 버스 안에서 선잠이 든 게 여러 번.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도시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끼니도 거르고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배차간격이 유독 느린 버스를 놓치고, 보내며, 기다리다 겨우 올라탔다. 목적지를 향해 가던 그 버스는 굽이진 길로만 올랐다. 오른쪽을 돌면 바다가 보였고 왼쪽을 돌면 항구에 잠자고 있는 배들이 야금야금 보였다. 들쑥날쑥한 풍경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난생처음 듣는 역에 내렸다. 오래된 골목길, 낡은 간판, 비릿하고 후끈한 바다와 여름의 냄새. 새벽안개처럼 희미한 매미소리, 대문이 열린 집 같은 것들에 나는 가장 순진한 기억을 가졌다. 무해하고 벌거벗은, 판단과 이성이라곤 없는 태초의 감정들. 어린 시절의 내가 가졌던 감정들이었다. 바다의 향을 맡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내가 바다였고 내가 산이었을 때. 그 무게만큼 누군가의 사랑이었을 때. 사랑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꾸만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따듯한 모양이었다.  


여름은 곧 이름이었다.

 걷고 걸어 항구에 가까워졌다. 항구의 맞은편 카페를 향해 가는 길은 여름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고요하고 잔잔하기만 했다. 한쪽 어깨에 맨 에코백이 덜렁 거리는 소리, ‘수퍼마켙’이라 적힌 간판과 그 안에서 들리던 희미한 생활 소음, 끼룩끼룩 갈매기의 소란만이 전부였던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은 점점 투명해졌다. 어부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지자 정착한 배의 온몸을 문지르는 파도의 다정한 철썩임이 보였다. 그 옆으로 내가 찾던 카페가 있었다. 영화 ‘바다의 뚜껑’에서 주인공이 운영하는 카페와도 닮았다. 큼직한 통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앞에 두고 바깥의 여름에 대해 생각했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생각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마음을 넋 놓고 보며, 보이지 않는 여름을 되뇌었다. 되뇔수록 보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났다. 대개 여름의 선명한 색을 닮은 이름들이었다. 여름은 곧 이름이었다. 살아오며 살아가며 쓰고 지우길 반복한 이름들이었다. 그중엔 깊이 가라앉는 것도 있고 윤슬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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