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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n 04. 2023

조각 기억

뜨거움을 걸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복판을 천천히, 촘촘히 걷다가 커피 잔이 크게 새겨진 간판의 카페로 들어섰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가득한 카페 테이블에 앉아 콩가루와 팥이 잔뜩 올려진 빙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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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이름 자체가 한 시절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난 종종 장소를 그리워한다. 그렇다고 그곳을 직접 찾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게 일단락될 그리움이 아니다. 장소에 대한 그리움은 내가 가진 그리움 중 가장 깊고 어쩔 도리가 없는, 감정 밖을 벗어난 하나의 중력에 가깝다. 장소가 그리워지면 한 시절 풍경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난 분명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있기엔 너무 멀다. 대개 조각 기억들이다.


장소는 조각 기억들을 데려오고 조각들은 언제나 나를 찌른다. 조각 기억의 일부에서 난 종로의 어느 이층 카페에서 맛없는 빙수를 먹고 있다. 그 기억이 왠지 아프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에 기대어 어찌어찌 살아가겠지만 장소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 지날수록 나를 자꾸만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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