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day Jun 10. 2023

가을 엽서와 금계국 먹은 아침

• 소박한 아침

아침으로 가을 엽서를 닮은 통밀식빵 한 조각과 스크램블에그를 먹었다. 노랑 메리골드와 금계국, 개나리가 한데 모인 아침식사. 작은 스푼으로 땅콩버터를 두툼히 떠서 식빵 위에 잔뜩 발랐다. 상처 난 자리에 연고를 바르는 것처럼, 구겨진 셔츠를 다리는 것처럼, 토스트 해 그을려진 거뭇한 부분에 땅콩버터를 마음껏 발랐다. 만나야 될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처럼 덕지덕지 많이 발랐다. 경쾌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소박하고도 배부른, 혼자였지만 즐거웠던 아침.


• 오후의 쿠키

비 올 듯 말 듯한 오후. 두툼한 쿠키 세 개를 먹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행성에 발을 디딘 어린 왕자. 쿠키 표면 곳곳에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울퉁불퉁 모난 얼굴이지만 이국적이고 투박해서 좋다. 쿠키 속엔 커버춰초콜릿이 으늑히 박혀있다. 기다림 끝의 재회처럼, 가슴 시릴 정도로 그저 달기만 하다. 엄지와 검지로 쿠키 가장자리를 뜯어 느릿느릿, 오물오물 천천히 먹었다. 먹는 내내 천둥은 베란다 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쿠키가 나의 오늘을 깊숙이 달게 지나간다. 곧 내릴 비처럼 촉촉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각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