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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Mar 08. 2024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프란츠 카프카 시선집

30대 초중반 나에겐 숙제 같은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란츠 카프카였다.

읽어도 읽어도 그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그의 작품들.

'소송', '변신', '심판', '실종자' 그리고 그의 마지막 미완성 장편인 '성'까지 읽고 또 읽었지만 사실 그의 작품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했다고 하기엔 무언가 미심쩍은 의문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서려있었다.

확실히 그의 작품을 소설적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읽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플롯 자체로 느껴지는 즐거움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주인공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불행한 일들이 물 없이 먹는 고구마처럼 답답함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고 카프카가 살았던 시절 헤겔을 비롯한 하이데거 등이 소위 말하는 존재론적인 철학사유가 시작되면서 독일어권부터 현상학적 환원을 통한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프란츠 카프카가 그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의 작품에 접근하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카프카의 텍스트에서 연민과 감동 그리고 존재론적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다.


그럼 그 이야기와 함께 시선집을 조금 소개해 보고자 한다.

프란츠 카프카(1883.07.03~1924.6.3)

우선 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방랑자 같은 삶을 살았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의 체코 프라하에서 성공한 상인의 삶을 살았던 그의 아버지 헤어만 카프카(1852~1931)는 아들이 셋 있었지만 둘은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프란츠 카프카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권력층인 독일계 사회에 집입하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보헤미안 제국의 유대인의 정체성이 있는 카프카는 독일어로 공부를 하며 결국 프라하 대학의 독일어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이 또한 아버지의 뜻으로 문학을 하고 싶었던 카프카에게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거대한 벽이요 부조리한 세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가 늘 원했던 하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오롯이 누리는 것뿐이었으나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아버지가 원한 길을 가지 않았기에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폐결핵 진단까지 받아 아픈 몸을 이끌고 원하지 않은 경제적 활동과 원했던 작가의 삶을 사는 것이 힘에 부쳤던 카프카는 세 번의 약혼과 세 번의 파혼을 겪는 등 그의 삶은 많은 부침이 있었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했던 시대로 세계 1차 대전을 직접 목도했을 뿐 아니라 그의 조국 보헤미안 왕국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에 병합되어 그 휘몰아치던 파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여동생들이 2차대전 독일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희생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명작가에 병든 몸으로 당시까지 살아있더라면 역사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를 넘어서는 지나간 간섭,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인 문학에 대한 열정과 생계, 자본주의사회의 여러 가지 폐해가 극단으로 치닫던 때, 보헤미안 왕국의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뒤로하고 평생을 독일어로 생각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 유대교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던 종교관으로 당시 주류사회에 주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유복한 어린 시절과 다르게 병약한 몸으로 생계를 책임 지어야 했던 자신, 결혼을 하게 되면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게 될까 하는 불안감 등등이 프란츠 카프카를 괴롭혔을 것이다.

생각해 보건대 프란츠 카프카의 삶은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로 세계-내-존재로 기투된 현존재로서 비본래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요소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자신의 실존에 대하여 본래적으로 존재하며 그 속에서 불안(죽음)을 느끼며 진정한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나아가는 삶을 선택 없이 살 수밖에 없었던 삶이라고 여겨진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일단 그는 어디에도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없었다.

가족. 종교. 민족. 국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는 이방인이었다. 이것은 그 사회 또는 대중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망각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삶을 기만하며 살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그였기 때문이다.(본래적 존재로 실존의 불안을 이해하며 사회 속에서 사랑의 가치를 가지고 선(善) 한 목적으로 연대감을 나누며 사는 것이 실존적으로 맞는 인간의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내던져졌다는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밖에 없었던 카프카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신체적으로 젊은 나이에 병을 얻으며 인간 삶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죽음에서 청춘이라는 망각의 위안을 얻을 시간조차 없이 내던져진 존재였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조차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 아버지의 강권. 생계와 건강의 문제 등등으로 철저히 재야에서 묵묵히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그에겐 자신의 실존이라는 운명적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각성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그였던 거다.


모든 조건에서 존재론적으로 그 누구보다 실존의 문제에 가까이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 그런 그의 삶의 조건과 재능에서 그의 사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고민이 사후 한 세기가 채 지나기 전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문학작품을 엄청난 산고 끝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프라하 유대인 공동묘지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묘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은 그가 쓴 짧은 산문시 내용에서 따온 제목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가 어느 길을 가거나 자유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책의 제목과 맥락이 가장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는 무(無)에 기반한 것이며 또한 하이데거는 인간 실존의 한계 즉, 죽음이라는 시간적 종말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한마디로 장 폴 사르트르의 말대로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가 수학 공식처럼 성립되는 것이다.

B(birth),D(death),C(choice)의 단어가 이렇다고 한다. 결국 태어나서 죽음 사이에 무수히 많은 선택이 있고 인간은 그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유를 통해 우리는 책임이라는 엄청난 굴레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이라는 짧은 시구를 통해 위와 같은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하여 핵심을 찌르며 진지한 사유 속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그의 짧은 산문시 116편과 그가 남긴 드로잉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굴곡 많았던 프란츠 카프카의 고민과 아름다운 언어를 감상하며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지금 주어진 삶에 무엇을 감사해하고 반성하며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으로 추천하며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망설임'에 수록되어 있는 시 한 편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너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의 마음의 안정을 잡아채는 것은 무엇이냐?

네 방문의 손잡이를 더듬는 것은 무엇이냐?

거리에서 너를 부르면서도

열린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아아, 네가 방해하고 있는,

네가 그 마음의 안정을 잡아채고 있는,

네가 그 방문의 손잡이를 더듬고 있는,

네가 거리에서 부르면서도

그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바로 그 사람이다.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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