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Mar 29. 2024

욘 포세- 샤이닝(줄거리 포함 해석)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욘 포세의 신간 소설이 발간되었다.

'샤이닝'이라 제목 지어진 8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장편소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에 출간한 책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이건 모지 싶을 정도로 제대로 소개할 줄거리조차 없는 이 소설 대하여 나름대로 파헤쳐 보고자 한다.


책표지에는 '욘 포세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으나 사실 이 정도 페이지 수이면 중편소설에 해당하는 분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은 소설이며 특별한 줄거리 없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독백과 사고(思考) 하는 부분만이 존재하는 파격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간략하게 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책에는 늦가을로 소개되지만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내린 배경을 보면 우리 기준에는 초겨울로 느껴지는 어느 날 주인공은 차를 몰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섰다.

직진과 좌. 우회전을 거듭하더니 이내 어느 숲속 좁은 길에 들어서고 차 돌린 공간조차 없는 길에서 오로지 앞으로만 나가다 질퍽해진 진흙탕에 차가 빠지게 된다. 꼼짝없이 차에 갇히게 된 주인공. 그 안에서 히터를 켜고 몸을 녹이던 중 주인공은 뭔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혀 해가 지기 전에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내 해가 지고 눈이 내리며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숲속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의 눈 내린 숲(출처:pixabay.com)

이제부터 이야기는 주인공이 내린 숲속에서 조난당한 채 의식을 잃어가는 중에 떠오른 생각처럼 초현실적인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에게 차례대로 나타나는 것이 있었으니 밝게 빛나는 빛의 존재,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마지막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얼굴이 없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존재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엔 부모와 검은 정장의 신사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 모습에 의아해하다 주인공 자신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그런 네 사람을 배경으로 그 뒤에서 모두를 감싸고 있는 밝은 빛의 존재가 다시금 빛을 발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빛의 존재와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의 부모와는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특별한 내용은 없으며 얼굴 없는 정장의 신사와는 아무런 대화 없이 끝을 맺는다.

빛의 존재와의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주인공 내가 '여기 누구 없나요' 하자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항상 여기 있고, 여기에는 항상 내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 목소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매우 가늘고 연약한 목소리지만, 온화함과 깊은 충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래,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는 목소리다' 그리고 다음 나타나는 부모와는 나의 현재의 처지를 걱정해 주는 부모의 마음 특히,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과거 부모 자식으로서 서로 간에 느꼈던 일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는 어떻게 보면 이 급박한 상황에서 너무나도 태연자약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나눈다. 마치 삶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우리 모두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의문의 검은 정장의 사람은 가까이 가서 보면 신발도 신지 않고 얼굴도 없는 형체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어머니 손을 잡을 채 그저 서있으며 빛을 발하는 존재에게 그저 빛을 받는 어떻게 보면 무기력한 존재로 밖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이 짧은 책의 생각보다 길게 쓴 줄거리이다.

이제 좋게 말하면 '초현실적'인 그리고 평소에 쓰는 나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 무슨 소리인가'할 수밖에 없는 소설의 정체를 한 번 파헤쳐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책을 읽은 내가 '아! 그저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책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소설책에 부록 형식으로 수록된 욘 표세의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에서 조금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말과 글은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특히, 말은 일상적인 대화나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할 때 쓰이는 것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침묵에 대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글이라고 연이어 말한다.

바로 위 책 표지에 있는 욘 포세의 말이 보이는가? "내게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다.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답이 어느 정도 나온 거 같다.

그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 글을 쓰며 소설로 폴어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과 무의식을 넘어 있는 형이상학적인 우리 삶의 의미 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의미 있는 삶을 살수 있을까?

그것은 주인공 내가 처한 현실에 답이 있다고 나름의 생각이 든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책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나라는 단독자로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세계에 관계하며 존재하며 그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현존재'라 칭하며 우리가 이렇게 많은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세계에 아무 이유 없이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세계-내-존재'라 말했다. 이유 없이 우연으로 존재하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재에 대하여 여러 물음을 제기할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우리 존재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할까? 그건 이유 없이 불현듯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낄 때이다. 그럼 그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불안은 우리의 실존이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그 필연적 종말에 대한 감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불안의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세간적 가치에 집착하며 그런 존재를 비본래적 존재라 하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래적 존재가 느끼는 불안의 감정 대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세간적 가치가 방해될 만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고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종적인 이 소설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다.

작가 욘 포세의 연설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합치니 일상적인 삶을 초월하는 '샤이닝'의 이야기가 와닿는다.

주인공 나는 이제껏 아무런 각성 없이 이길 저길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잃고 눈 내린 춥고 어두운 숲속에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의 감정이 들어선다.

그때 죽음 앞에서 죽음을 인식하고 그것이 당장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니 밝은 빛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아울러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세간적 욕망에 길을 잃고 헤맨 존재들의 상징인 나의 부모와 대중인 얼굴 없는 검은 정장의 신사가 나타나고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 그렇게 신발도 없이 정처 없이 헤매는 존재들이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늘 따뜻한 빛으로 우리 모두를 비추는 존재가 있으니 이것은 각자 나름의 초월적 구원의 힘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존재'가 죽음으로 인한 불안을 인식하며 '본래적 존재'가 되려는 사태가 시작되는 초월적 상황(후기 하이데거는 '달존'이라 했다)의 출발선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욕망으로 비틀어진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고 실천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윤리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라는 구원이 등장하는 것이다.(이제부터 주인공 나는 바로 그 상황에서 죽는다 하여도 인간의 본래적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깨달음은 얻고 가는 존재는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이며 우리는 그의 소설을 통해 실존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세간적 가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염두에 둔 진실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건대 죽음을 인식하고 산다는 것은 그 모든 욕망에 바탕이 되는 것들의 허무함을 깨닫고 단 한 번뿐인 삶의 시간을 진실로 아끼며 우리 공동체가 함께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건강한 삶.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유일 신(神)인 하나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칸트의 관념론적 실천철학이 될 수 있으며, 불교나 유교의 가르침이 될 수 있다. 보편성을 인정받아 이렇게 어두운 인간세계에 밝게 빛날 수 있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가 깃든 그 무엇이면 우리는 욕망들의 어두운 구렁에서 그 누구든 구원의 빛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처럼 눈앞의 죽음이 닥친 극한의 상황에서도 차분히 느낄 수 있는 그 '빛'말이다. 짧지만 작가 '욘 포세'의 철학이 담겨 있는 소설 '샤이닝'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며 나의 마음속에 어떤 도덕관념을 빛을 나게 하여 단 한 번뿐인 삶에서 우리 공동체에 따스함을 전하며 살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본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