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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 Sep 30. 2020

코로나 시대, 스위스 출장기

20년 9월, 인천부터 취리히까지

온 회사가 난리다. 내 출장을 두고 누구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정작 나는 담담하다. 처음부터 계획된 출장이었고, 일이 되려면 당연히 현지에서 확인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담당자인 내가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을 걱정하며 경영진은 물론 동료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마스크+페이스 쉴드+장갑+방호복을 모두 착용한다는 전제하에서 출장의 결재가 떨어졌고 출장 전주는 무슨 마가 꼈는지 매일매일 예상치도 못한 일이 뻥뻥 터져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날이 다가왔다. 두둥~


2주일 출장이라 짐이 좀 많다. 큰 캐리어를 가득 채우고서도 작은 캐리어를 끌어야 했고, 노트북은 백팩에 가득, 출장 시 쓸 작은 보조가방도 어깨에 매여있다. 혹시라도 굶어 죽을까 봐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출장. 큰 트렁크의 절반이 먹을 거다. 많이 빼냈는데도 한가득. 누가 무증상자인지 모르는데, 걱정 가득 안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느니 딱딱한 즉석밥을 씹기로 했다. (전자레인지가 없다. 그냥 생쌀을 씹는 느낌으로 즉석밥을 먹을 수도 있다.)


공항버스도 모두 중단된 지 오래다. 승객이 없는데 운행 할리 만무하다. 경기도에 사는 내가 그 큰 트렁크를 끌고 전철을 바꿔 타며 갈 자신이 없어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다행히 법카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다. 이 코로나 시대에 유럽 출장을 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기대도 있고 설레었던 것도 사실인데, 막상 떠나려 하니 걱정이 앞선다. 더 많은 걱정이 나를 감싸기 전에 생각보다 빨리 서울역에 도착했다. 손목이 아파오도록 무거운 트렁크 (내가 뭘 그렇게 먹는다고 바리바리 싸왔던가? 그런데 지내고 보니, 살인적인 스위스 물가에 즉석밥과 각종 레토르트 식품이 없었다면 파산했을지도 모른다 ㅋ),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혼자 심각하게 공항철도를 타고 터미널 2로 떠난다.


한참을 가도 안 도착할 것 같았는데, 이내 승객 몇 명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내린다. 모르는 승객이지만 서울역부터 같이 타고 온 승객에게 말을 건다.

"출장 가세요?"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비행기. 왠지 모르게 심적으로 위로가 된다. '아 나만 출장 가는 거 아니구나?'


늦은 시간에 도착한 인천공항이지만 (밤 10시경) 아무리 그 시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너무 한산하다. 직원이 더 많은 듯한 느낌이 들며, 10분도 안 걸리며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다. 너무도 다행히 라운지를 쓸 수 있어 비행기 출발까지 뭐라도 먹으러 라운지에 들어간다. 어느 뷔페 부럽지 않던 라운지였는데 샐러드, 맥주, 유부초밥과 컵라면이 전부. 물론 사람도 거의 없다. 서울역에서부터 같이 타고 온 승객과도 마주친다. 뭐 어디 멀리 갈 데도 없지 않은가? 같은 비행기라는데 ㅋㅋ

라운지에서 먹은 샐러드와 유부초밥. 그래도 먹을 게 있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눈치를 보며 스멀스멀 방호복을 입는다. 마스크는 이미 하고 있었고, 페이스 쉴드를 쓴다. 안경 타입을 살걸, 스펀지가 있어서 숨을 쉬면 습기가 생겨 앞이 뿌옇다.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손이 가는 것을 막아 주는 게 페이스 쉴드는 한몫했다. 새벽 1시 비행기, 너무 다행히 누워서 갈 수 있다. 회사의 배려에 감복하며 뒤척이는 잠을 청한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 너무 태연히 턱스크를 쓴 외국 승객이 신경 쓰이긴 하나 어쩌겠는가? 내겐 그 어떤 권한도 없는 것을...


잘 자고 일어나 경유지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린다. 코로나로 직행은 없어지고 암스테르담에서 경유한다. 그래도 암스테르담 공항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다. 면세점도 열려있고. 하루에 만 명 가까이 확진자가 나온다는 유럽 맞나 싶다. 대기하는 동안 라운지에서 인천에서 같이 타고 온 승객을 또 만난다. 은근히 반갑기도 하고 세상 좁다는 생각을 하며 동료와 출장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나눈다.

경유지의 라운지. 사회적 거리두기로 테이블 사용이 제한된 곳이 있다.


국내선인 듯하다. 분명 암스테르담에서 타서 취리히에서 내렸는데, 국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미그레이션도 없다. 환승하며 진행한 이미그레이션이 전부이다. 그렇게 마치 제주도 가듯이 1시간 정도 환승 비행기를 타고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약 20분. 약 6만 원의 택시비를 내고 호텔에 내린다. 원래 비싼 건지, 덤터기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했다.


짐 정리하고 도착한 날 바로 미팅을 준비한다. 앞으로 2주. 여러 미팅과 다양한 경험들이 함께할 이번 출장. 일부러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다. 이 시기임을 남기고 싶어서.


호텔에서 20미터만 가면 강이다. 운치 있고, 사진만 찍으면 엽서 같다. 코로나가 무색하게 그냥 다 예쁘다. 힘들게 온 출장인 만큼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지고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날씨가 한 몫한다. 그냥 다 예쁘다.
강가는 어스름한 저녁이 더 운치 있다.

추석 연휴를 해외에서 보내는 행운을 얻은 만큼 산책하며 얻은 힐링 같은 사진을 함께 실어본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자유롭게 여행 갈 그날을 고대하며...

주말의 강가에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이렇게 많은 백조를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있었던가?
해 질 녘의 하늘에 구름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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