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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 Apr 24. 2022

막차탄 코로나 확진

막판 코로나로 땡(?) 잡은 일주일 휴가~

이미 2년여간 너무 익숙해져 버린 마스크 쓴 삶. 그렇게 용케도 잘 버티고 잘 피해왔던 코로나를 이 막판에, 다들 이제는 코로나 확진이 감기 정도로 여겨지는 이 마당에 이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22년 4월 18일 (월)

5월이면 자가격리도 사라지고, 마스크 의무 사용도 없어지고, 그동안 지켜왔던 방역수칙들이 사라진다는 말에, '아 걸리려면 지금 걸려야 하는데?'라는 방정맞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다. '5월에 걸리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가격리 키트로 목젖과 코를 쑤신다. 어제저녁부터 칼칼했던 목이 맘에 걸렸는데, 그건 부모님 댁의 공사로 인한 먼지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며, 진단 키트의 한 줄을 확인하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잠겼던 목소리는 대부분 점심때쯤이면 풀리는데 원래 높지 않았던 나의 목소리 톤은 이상하게도 오후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 5시 경이되어서 부랴부랴 보고 자료 작성을 마치고 상무님께 보고 후에 병원으로 향했다. 

겸사겸사 신속항원검사도 해보고 음성이면 약이나 타 오려고 했다. 지난번 1시간 넘게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았는데, 병원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자가 진단 음성 나왔는데, 뭐 별일 있겠냐 싶었기에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속항원의 말대로 금방 결과가 나왔는데, 귀를 의심했다. "양성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키트에는 두 줄이 선명하게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멍했지만, 우선 회사에 전화를 했고, 어제저녁 식사를 같이 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지만, 무증상도 있다고 하니, 그래도 5월에 걸려 자가격리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약을 지어 들고 회사로 돌아와 바로 퇴근했다.

그때부터 바로 자가격리!!


22년 4월 19일 (화)

이때만 해도 일주일 땡잡은 휴가라고 생각했다. 다들 신생아처럼 잠만 자라고 하고, 푹 쉬라고 하는 말을 내게 했으나 일단은 불편한 목 정도인 터라 흘려 들었다. 

그렇게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습관이 무서운 지라 아침부터 눈이 뜨였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빈둥거리며 지나고 있는데, 어제보다 목은 더 잠겨 있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것처럼 쉬어 보자고 마음먹고 주말처럼 늘어져 하루를 보내며 내일모레쯤에 멀쩡해져 있을 나를 상상하며 뭐하고 집에서 놀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22년 4월 20일 (수)

아무래도 이상하다. 원래 나는 열이 늘 있다. 귀로 재는 체온계로 재면 늘 37.5도가 나온다. 솔직히 코로나 초기에는 이걸로 몇 번 집에 일찍 가는데 써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체온계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데, 어지러울 정도로 열이 오르는 듯하여 측정해 보니 38.5도. 38.8~9도까지 오르는 것이 아닌가? 몇 번을 찍어도 유사한 숫자가 반복되어 나오니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집에 있는 해열제를 2알 털어 넣고 바로 침대로 향했다. 

자는 내내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부어서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고, 목에서 고름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22년 4월 21일 (목)

열은 조금 내려 37.8도. 그래도 정신이 없던 차에 월요일에 확진을 내려주신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 약 먹고 차도 없으면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 다시 받아요"

굳이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엊그제 보건소에서 온 문자가 생각났다. 생존을 위한 분주한 손놀림으로 증상들을 써 내려가고 설문 같은 곳에 전화번호를 남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보건소와 연계되어 24시간 대면 치료를 하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란다. 내가 적은 것들의 증상을 물어보시다가 말고, 바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장 지금 오세요. 상태가 너무 심각하네요?" "네?"


운전하다가 쓰러지면 큰 일이다. 정신을 부여잡고,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지난 며칠간 아파서 제대로 씻지도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하나도 없었다. 반팔 입으신 분들도 계시는데, 패딩을 2개나 껴입고 초점이 나간채로 있던 나는 엑스레이를 찍고, 항생제와 포도당 주사를 섞어 수액을 맞고, 엉덩이 주사를 맞고, 소변검사까지 한 후에 집에 겨우 왔다. 무료로 약도 지어주셨다. 

주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목의 부기는 내려가 이제 겨우 숨이 쉬어지고 살았다 싶었다. 그러니 내가 고파 우동을 끓여서 신나게 먹고 타 온 약을 하나 먹고 자고 났더니 확실히 좀 나아져서, 이젠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바이러스가 이제는 장으로 내려갔나 보다, 밤새 1시간 30분밖에 못 자고 들락거린 화장실만 거의 10번. 처음엔 점심에 먹은 우동이 잘못됐나? 저녁에 먹은 죽이 잘못됐나? 싶었는데, 이것 또한 코로나의 증상이란다. 


22년 4월 22일 (금)

한 이틀 계속되던 바이러스 장의 반란은 다행히도 어느 정도 나아졌는데, 이번에는 잔기침이 시작되었다. 또 하나 급 깨달은 것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맛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정말 냄새가 거의 안 나서 놀랐다. '아 이렇게 모든 증상을 다 겪게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과 함께, 땡(?) 잡은 일주일 휴가로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 버린 상황.


누워 있으면 기침이 나고, 앉아있으면 현기증이 난다. 잔기침에 마셨던 물이 역류하고, 짜 먹던 도라지즙이 코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감사하게도 매일 전화해주시면서 내 증상을 살펴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목소리를 듣더니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일단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하신다.


22년 4월 23일 (토)

식욕이 돌아왔다. '살아있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아졌다. 부었던 목이 가라앉은 건 며칠 됐고, 장에서 난리 치던 것들도 어느 정도 잔잔해졌다. 다만 여전히 잔기침과 냄새를 못 맡는 것은 여전한데, 목소리는 돌아올 기약이 없다.

지난 목요일부터 피크로 아팠던 나는 냄새를 못 맡는다는 핑계로 하나도 씻지도 않고 집에서 빈둥 거리며 증상을 체크하는 생체 실험을 이어나간다.


22년 4월 24일 (일)

오늘 밤 12시면 자가격리 해제이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다시 나를 호출하셨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무료 약을 줄 수 있는 날이라며 기침, 가래, 코막힘에 집중된 약으로 바꿔 조제해 주셨다. 나가야 하니 부랴부랴 겨우 씻고 마스크를 쓰고 차를 몰고 가서, 야외에서 약사님께 약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약은 먹으면 너무 졸리다. 약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일주일 동안 그렇게 아팠는데, 살은 하나도 안 빠지고 얼굴만 퉁퉁 부어 있었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대적인 샤워와 구석구석 씻음으로 머릿속으로 느껴지는 꼬리꼬리 한 냄새를 말끔히 지워본다. 여전히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맹맹한 코 목소리는 여전하며, 잔기침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분명히 하루 이틀 지나면 증상이 없어지고 호전되어 있을 것이다. (이번엔 맞겠지? 아직 남은 증상이 있던가?)


막판 코로나 확진을 겪으며...

그동안 그렇게 많은 주변인들이 이렇게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내가 너무 무심했단 생각도 들었다. 증상 종합세트를 받고 나니 백신도 없던 2년 전 그 시절, 무슨 배짱으로 방호복 입고 해외출장을 다녀왔었나 싶었다. 그렇게 2년을 잘 버텼는데, 막판에 부질없이 증상을 겪고 나니 참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받은 문자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니 도와주는 손길이 있고, 증상을 체크해주는 의료진이 있다. 내가 낸 세금이 하나도 안 아까웠고, 이렇게 밤에도 주말에도 고생하시는 의료진이 있어서 내가 살아 있는구나 싶었다. 

그날 의사 선생님이 "빨리 오세요!"라고 강하게 말씀 안 해주셨으면 아마 실려갔을지도 모른다. 살려줘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나라의 의료체계 및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싶었다. 그리고는 흔한 해열제 하나 없어 죽어 간다는 많은 다른 나라의 사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곧 나을 것이고, 냄새도 다시 맡을 것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금은 피곤하고 힘들고 하겠지만 역시 다시 건강하게 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약 없는 기근과 내전 속에서 해열제 하나 없어 죽어가는 그들을 생각하니 한 달 1만 원이라도 기부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주변에서 확진으로 힘들었던 친구들에게 '괜찮냐?'라고 안부를 물어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나를 돌아보고, 조금 나은 인간이 되었다면 이 역시 막판 코로나로 땡(?) 잡은 일주일 휴가의 의미로는 괜찮다 싶다. 우리나라 선진국이다 싶다. 다 낳고 병원에 찾아가 인사도 한번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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