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존재의 이유와 목적
사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보이는 것을 잘 보아야 한다. 잘 본다는 것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선입견에 지배되지 않고,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사물을 보이는 것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러면 대상을 파악하기 쉽고, 대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그럼 사물의 보이지 않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사물은 존재의 이유와 생성의 목적이 있다. 단추 하나만 보아도 꼭 필요한 위치에 목적에 맞게 존재하고 있듯이, 모든 존재에는 설계자의 필요에 의한 존재 목적과 계획이 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도 목적 없이 하는 일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것이 변화를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고 표시되는 사실만으로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이 다 진실일 수 없는 이유다. 꽃은 필 때만 꽃이다. 꽃이 존재하는 이유는 열매에 있으므로 우리가 봐야 하는 본질은 눈앞에 보이는 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열매다. 꽃만 보는 것하고 열매를 생각하고 꽃을 보는 것은 다르다. 꽃만 볼 때에는 더 애정이 가고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러나 감정에 치우치고 감상에 젖어 밖으로 표현된 것만 보게 되면 본질을 놓치기 십상이다.
창의란 그 목적 속에 감추어진 존재 이유를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증가된 가치의 결과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의 이유와 생성의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 이 일을 하고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표현하는 물성
사물을 표현하는 물성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물성이란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하며, 성질은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말한다. 물질의 형태는 변하지만 고유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액체는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나 크기가 변하지만 성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얼음이나 수증기는 밀도나 단단함에 따라 물리적으로 모양이 바뀌지만 성질은 똑같이 물이다.
나는 직장에 있을 때 가끔 디자인 시안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었다. 이때 디자이너와 우리 직원들의 차이를 많이 느꼈는데 그 차이가 바로 물성의 표현에 있었다. 우리 직원들이 화려하고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는 반면에 디자이너는 표현된 사물의 물성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디자인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만 물성을 유지하면서 표현력을 살린다면 고객들의 시선을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스치고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그림이나 도예작품 전시회에 가도 예술적 지식이 부족하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이 그렇다. 평상시에 보는 것보다 더 사실감을 느낄 때 그곳에 오래 머물게 된다.
우연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란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사물의 고유한 물성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 적이 있다. 항아리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우유의 점도를 보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고, 거칠고 번들거리는 빵과 도기 또한 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사물의 고유 성질을 보아야 그것의 변화가 만들어낸 가치를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유심히 보고, 오래 보고, 더 깊고 온전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겉모습보다 마음을 봐야 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 것이다. 마음이 고아야 아름답고 그러면 오래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진다. 아름다움이란 바깥 형식에 의해서라기보다 속마음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해하는 만큼 보인다
또한 우리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많이 알려고 노력하지만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앎을 상징하는 지식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앎은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지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말 그대로 아는 만큼만 볼 수 있게 된다. '아는 만큼'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지식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도구로 사용해야지 지식이 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자기 내면에 쌓인 지식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늘의 비행기가 속력에 의하여 떠 있듯이, 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삶이 일관되게 정돈될 수가 없음은 물론 자신의 역량마저 금방 풍화되어 무력해 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책 속이나, 내 안에 축적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의 연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첫 직장에서의 주 업무가 여성으로 구성된 조직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그렇다 보니 이직과 퇴직률 관리가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였는데 그때 나는 인력관리를 가장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전국의 많은 동료들이 어떻게 하면 인력관리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 왔다. 자기들은 직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알고 있는데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 내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복잡하게 알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사람을 이해하면 된다.”
알려고 하는 것보다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 해가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진다고 말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말하기 전에 그가 섬에서 태어나고 섬에서 성장한 사람이란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전체 속의 과정을 보는 것이라면 앎은 부분을 확대하여 맞고 틀리고와 같은 결과만 보게 된다.
고객가치
마지막으로 가치를 보는 것이다. 그것이 일이든 사물이든 고객 관점에서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하며 고객이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때 알아두어야 할 원칙은 비이성적인 고객은 없다는 것이다. 간혹 조직의 리더들이 스스로 중요한 가치라고 판단하며 고객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럼 고객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고객가치>(김종훈/클르우드라인)에서 고객가치의 핵심 요소로 잘 정리하고 있어 참고하였는데, 첫째 요소는 고객들이 가치를 평가할 때 가장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기능적 가치다.
기능적 가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기능, 성능, 품질, 맛, 가격과 같은 기능성을 말한다. 그러나 기능적 가치에 대한 고객의 가치판단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무조건 싸고 좋은 가성비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차별적 효용성이 높은 기능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그대가 엘지 스타이러를 사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감성적 가치이다. 이것은 디자인, 분위기, 멋스러움과 같이 고객의 취향에 따라 기준이 수시로 달라지는 주관적이면서 감성적인 것이다. 감성적 가치는 기능적 가치로 차별화가 어려운 부분을 차별화하기에 좋고, 충성 고객층을 두텁게 만들고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 특히 기능적으로 다소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감성적 가치가 충족되면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구매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다.
세 번째는 정신적 가치이다. 고객은 그들만의 희소가치를 추구하며 그 가치를 신분 상승으로 받아들인다. 정신적 가치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개별 브랜드의 고유한 품격으로 유행에 덜 민감하여 생명력이 강하다. 모든 고객가치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적 가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이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품격과 포지션이 달라진다. 누구나 명품 하나쯤 갖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리더는 이와 같은 가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사물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가 있다. 큰 스님과 작은 스님이 숲을 거니는데 이때 바람이 불자 주변의 나무들이 쏴아~ 소리를 내면서 흔들렸다. 이 모습을 보고 작은 스님이 말했다. “스님, 나무가 몹시 흔들립니다.” 큰 스님이 작은 스님을 바라보더니 대꾸했다. “야, 이놈아! 바람이 부는 거지!”
리더는 큰 스님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 수시로 변하듯이 고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리더의 시각이 더 민감해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