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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Apr 23. 2021

질문을 위한 마중길

보는 것에 대하여

보이는 것 그대로 보기

많은 사람들은 일상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 조금만 생각해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일 아침이면 해가 뜨지만 매일 다른 시간에 뜨고, 매일 마시는 공기도 같은 것 같지만 공간 속의 기류는 끊임없이 바뀐다. 거리의 가로수도 새로 잎이 나는가 싶더니 금세 무성해지고, 다시 잎이 지고 나기를 반복하며 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 것 같지만 매일 하는 일이 다르고, 보는 책과 접하는 정보도 다르다. 그리고 매일 만나는 사람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표정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공간과 살아온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단조롭고 반복적으로 살아간다.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치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실시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이 있다.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심리학과 건물 한 층을 무대로 흰 옷을 입은 팀과 검정 옷을 입은 팀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농구공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흰 옷을 입은 팀이 공을 패스한 횟수를 세라고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집중하여 동영상을 보고 대부분 몇 번 패스했는지 정확히 맞추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패스를 주고받는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다. 중간에 고릴라가 지나간 것을 봤냐는 것이다. 여섯 명이 공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로 커다란 고릴라가 오른쪽에서 나와 중간에서 가슴을 친 다음 왼쪽으로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가고, 뒤의 커튼도 바뀐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런 과정을 보았는지 물어보면, 놀랍게도 고릴라를 봤다고 대답한 사람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참가자들이 공의 패스 숫자를 세는 데 집중해서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패스 횟수, 고릴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중간에 빠져 나간 것, 커튼의 색이 바뀐 것 등 네 가지를 모두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실험에서 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은 내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바로 내게 주어지고 해야 하는 일이고 집착하는 생각들이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특히 수용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럴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세상은 좁아지고 자신도 작아져 쳇바퀴 도는 일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다.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뜻이지만, 무에서 유를 탄생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창조는 대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정의를 내려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대상이 새로운 시선으로 파악되어 이전과는 다른 대상으로 거듭나는 것이 창조다. 대상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창조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부를 만들어준 창조는 사물이 보여주는 것을 놓치지 않는 데서 나왔다.

프랑스의 화가 세잔도 하나의 사과를 보이는 것 그대로 그리기 위해 자신과의 엄청난 싸움을 벌여야 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본 사과를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과를 다 잊어버려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다른 식으로 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보아야 한다. 가끔 다큐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초고속 카메라로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 신비하고 아름답다. 마치 어린아이가 쥐었던 주먹을 하나씩 펴는 모습처럼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들의 눈도 카메라처럼 느리게 보면 사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예술가는 이런 모습을 보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시’로도 표현한다. 

클레의 그림 ‘꽃이 피다’에는 꽃의 형상은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클레는 활짝 핀 상태의 명사를 그린 것이 아니라 피고 있는 동사를 그렸다. 클레는 꽃의 생기를 느끼며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시인 고은도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 했고,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고, 부잣집 담장의 장미만 예쁜 게 아니라 자세히 보면 풀꽃도 예쁘다는 것이다. 천천히, 자세히 보면 사물은 또렷한 모습으로 자기만의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시각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본다는 것이 단순히 보는 감각에 그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관점(觀點)은 보는 지점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물이나 현상을 판단하는 방향이나 처지를 뜻하듯이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번 듣기보다는 한 번 보는 것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百聞不如一見이 그렇고, 見物生心처럼 인간의 욕망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시각에는 익숙함이나 낯섦이 담겨있기도 하다. 같은 지역을 여행하고 와서도 저마다 다른 것을 봤다고 말한다.     

따라서 본다는 것은 이해하고, 익숙해지고, 느끼고, 사랑하고, 입장을 표현하다 등 여러 감정이나 가치와 폭넓게 어울린다. 그러므로 리더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는 노력을 통해 사물이 가지는 신비로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인식하고 싶은 것만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분명 편안하다. 이미 정해진 기준을 따르고 지식과 경험대로 하면 된다. 시키는 대로만 하고 지시에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은 시야가 좁아지고 스스로 자기 안에 갇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데도 말이다.

물론 보이는 대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보이는 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보편적 이념으로 무장한 기준을 버리고 지식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확고함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식과 경험은 삶의 도구로 사용해야지 그것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도시의 빛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내가 사물을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 안의 확고한 답이 더 많은 다른 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이 쌓은 지식과 경험이 만든 답을 버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보이는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리더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대상이 보여주는 것을 보는 넓은 시선으로 바꾸고, 당연함에 시비도 걸어보고 이유를 묻고 관계를 따져가며 봐야 한다.     

또한 리더는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려는 지적인 노력과 반성을 해야 한다. 자기 확신에 빠진 리더는 비이성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다. 자기 감성에만 너무 빠지게 되며, 소유한 것을 지키려고만 하게 된다. 이런 리더는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본다. 그러나 지적인 리더는 이성적이면서 논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소유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과거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기 위해 세상을 보이는 것 그대로 보려고 한다.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이는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느끼는 이 쾌락이 바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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