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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May 31. 2021

질문을 하기 위한 느낌

앎과 느낌의 차이

앎과 느낌의 차이     

나에게는 박학다식해서 박사라는 애칭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는 많은 책을 읽고 신문을 정독하며 지적 유희를 즐긴다. 그러나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고 그저 평범함을 유지한다.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만큼 짜릿한 일도 드물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앎이 실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앎은 의문을 느낌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대부분 앎이 느낌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앎과 느낌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앎이 경쟁이 되고, 강요된 지식이 머리를 떠나 가슴에 미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식이 앎으로 끝나지 않고, ‘아는 것이 힘’이란 논리에 지배되지 않도록 느낌으로의 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앎은 ‘옳다/그르다’, ‘맞다/틀리다’, ‘있다/없다’처럼 판단을 내릴 때 필요하다면, 느낌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느낌은 우리 몸이 감각하는 것들로부터 발생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것들, 그러니까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모든 경험이 어떤 느낌을 불러온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쑥국이 생각난다. 봄빛이 가득한 언덕에서 막 땅을 밀고 나온 연한 쑥을 뜯어, 된장을 풀어 만든 국물에 정성스레 다듬어진 한 줌의 쑥을 넣으면 진하게 올라오던 향긋한 쑥 향을 잊을 수 없다. 맛은 물론이고 그때 장면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이런 경험은 마음속에 평생토록 간직하는 추억이다.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난다. 이렇게 느낌은 몸이 감각하는 것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다. 

앎은 매일 매일 같은 것인 반면에 느낌은 매 순간이 다르다. 우리는 매일 다른 느낌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타인을 배워 간다. 앎은 경험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면 느낌은 경험하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가 더 긍정적이다.    

앎이 어제의 것과 오늘의 것에서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느낌은 그 둘에서 차이를 발견한다. 

공부가 그렇다. 공부는 언제나 같은 것을 찾고 유사한 문장을 연결하고 공통점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미 정해진 것, 확정된 개념을 따라 논리를 만든다. 그러나 느낌은 경험을 통해 어제와 다른 차이를 발견한다. 어제는 빛이 강렬하여 덥던 태양이 오늘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매일 먹는 밥도 허기질 때 먹는 밥하고 배부를 때 먹는 밥의 맛이 다르고, 같은 음악도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어제는 미웠던 동료가 오늘은 반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느낌이란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것이라도 매번 다른 차이를 느낀다. 

왜 우리는 이런 차이를 느낄까? 사람의 마음이 갈대와 같아서라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어제 본 태양이 같아 보이지만 뜨는 시간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오늘 만난 사람은 다르다. 그래서 모든 사물은 같지만 다르다. 자신도 매일 같은 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와 분명히 다르다. 시간과 공간,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나도 매일 변하기 때문이다. 느낌은 이렇게 매일 변하는 사물의 에너지의 상호 교류를 통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 에너지의 교류가 생성의 차이를 만든다.     

또한 앎은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라면 느낌은 자기만의 고유한 힘이다. 

책장이 헤어지도록 외우고, 문제를 수도 없이 풀고, 시험을 통해 평가받아 얻은 지식이 인터넷 포털 검색 한 번으로 해결된다. 지식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이 되었고, 교육과 전수의 내용이 아니라 검색과 전송의 내용이 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넘은 지 오래고, 지식은 오늘도 누군가에 의해 업그레이드되어 흘러 다니고 공유된다. 이미 공유된 지식은 더 이상 힘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맞으면서도 틀리다. 세상에 답과 이론으로 정리되어 나와 있는 지식은 힘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말이 맞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지식이 절대적 힘으로 작동될 때다. 그러니까 지식이 자기만의 고유한 힘을 가질 때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자기만의 고유한 힘은 느낌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안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느낌은 경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비록 같은 경험을 하여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독립성을 가진다. 좋은 경험을 많이 하여 그 경험에서 얻은 느낌이 몸과 마음에 화석처럼 새겨지면 좋다. 그리고 그 느낌이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생각의 주도권을 머리가 가졌다면 이제 몸과 마음이 가져야 한다. 다른 생각, 나만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은 느낌, 즉 감(感)에서 온다. 느낌이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야 가능한 것이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것이 되는 경험을 하면 지금까지 알던 것이 시시해진다. 나만 가지는 고유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고유한 힘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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