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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Jun 06. 2021

질문은 무뎌진 감을 깨워야 한다.

무뎌진 감각을 깨워라.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도무지 마음을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작심삼일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삼 일을 넘기지 못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마음은 처지와 입장 앞에 늘 망설이고 문제 앞에서는 타인과 상황에 편승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작가 김별아는 소설 <논개>(문이당)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기억은 요망하고 야릇하다. 그것은 결코 정직하지 않다. 사실의 의미나 진위의 경중을 떠나 앞뒤가 바뀌고 때로 가당찮게 변질되기까지 한다. 그 모든 요사가 그것을 지닌 자의 마음의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간사하고 기묘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이렇게 기억도 마음에 의해서 변질 된다고 했다. 

반면에 느낌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내가 느끼는 만큼 세상은 내 것이 된다. 마음의 요사도 누구의 탓도 아니다. 왜곡하지 않은 오직 내 세계인 것이다. 아는 것에 제한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한 것에 고집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느낌은 내게 말을 걸어오고 다른 세계로 성큼 안내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노력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란 없다. 다르게 느끼고 싶다면 몸과 마음이 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먹는 음식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듯이, 느낌도 몸을 움직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잘 느끼는 사람들은 몸의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게 열심히 움직인다. 모든 게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각이 무뎌져 느낌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디어진 감각을 살리는 방법으로 여행이 좋다. 여행은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더 좋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하면 온몸의 감각이 열린다. 이때 느낌은 다르다. 매일 먹는 밥의 맛이 다르고, 매일 보던 길가의 작은 민들레도 여행에서 만나면 반갑게 다가온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와 물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 정을 느끼고 사랑을 배우게 된다. 

현실을 떠나 다른 현실을 만나고, 나의 생업과 그들의 생업이 다를 때, 그들의 현실과 생업이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 되어 내 상상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내 현실의 지평이 넓어지고 전혀 다른 문명 속에 들어가게 될 때 여행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몽골 초원과 사막, 게르와 마유주와 말은 그들의 일상이고 생업이지만 나에게는 꿈이고 상상이 된다. 그곳에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하고 그것을 만나는 순간 내 현실의 지평은 그들의 넓은 초원처럼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다. 

그러나 여행 자체가 목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군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음식을 먹으러 가고, 사진 속의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가 되면 여행은 모방이다. 삶의 모방, 기껏 현실을 벗어나 만나게 되는 동일한 현실, 생업으로부터 도망쳐 겨우 또 같은 생업을 만나고, 나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이 동일할 때, 그것이 풍요도 아니고 여유도 아니고 느긋함도 아닐 때 여행은 그저 피곤함이다. 

집에서 나와서 만나는 피곤함과 어제의 일상처럼 동일한 시시함을 느끼는 것은 여행이라는 목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의 삶이 시작과 끝 사이에 존재하는 여정이라면 삶은 여행을 닮았다. 여행을 떠나 와서 느끼는 것이 전과 다르지 않다면 나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행은 나의 시선으로 지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고, 어제하고는 다르게 사물을 보고 듣고 만지면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다른 느낌을 찾는 연습이다. 

물론 경험하지 않고 간접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간혹 영화 속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을 흘리거나 마지막 멋진 장면에 시원함을 느낀다. 그러나 엔딩 자막과 함께 애써 흐른 눈물을 닦으면서 영화 속 감정도 닦아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동일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책을 보며 느끼는 감정도 정도는 있지만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마지막까지 손에 땀이 고이게 긴장하며 몰입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다시 현실이다. 몸으로 기억하지 않는 기억은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느낌은 모방되지 않는 나만의 독립된 고유함이다. 이 고유함이 세상을 보는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 지금이란 시대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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