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김부장>:스스로를 '정보'처럼 다루는 시대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사는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by 수나로이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너무 현실적이라 웃기기보다 짠하다’ ‘비현실적이다’


같은 드라마인데, 다수의 평이 이토록 극과 극일까.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일상을 통해 결국 세대의 구조와 인간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다면 전자의 평에 공감이 갈 것이다. 반대로 주인공 낙수(류승룡 분)의 감정에 순간순간 밀착해 시청했다면, 후자의 평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본래 ‘드라마’란 것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극적 장치를 사용하는 장르다. 모든 장면이 사실적이었다면 오히려 이토록 큰 반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얼마나 쉽게 단정하는가]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경험’을 가진 사람이 ‘어떤 시선’을 갖게 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즉, 극 중 김 부장의 행동은 성격이 아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자신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조직의 압력과 책임의 무게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꼰대의 언어’ 뒤에는 아랫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비단 김 부장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얼마나 쉽게 단정하고 있는가.

겪어보지 않은 자리의 무게를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빠르게 판단해왔는가.


해당 드라마는, 이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다시 묻도록 하는 장치다.


경험이 희소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 정보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이해는 더 느려진 시대 ]


AI 시대는 판단을 빠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서로를 ‘단순한 정보’처럼 처리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해의 깊이는 오히려 희미해졌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삶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할 틈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타인을 쉽게 판단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얕은 언어로 설명하려 들기 시작한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를 두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빠르고 직관적이며 자동적인 판단, 또 하나는 천천히 숙고하며 맥락을 살피는 판단이다.


현대 사회는 대부분 전자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렇게 ‘빠른 판단’으로 내린 결론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자의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는 인간은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패턴에 끼워 맞추는 판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빠른 판단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왜곡을 강화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 자존심은 커졌지만, 자존감은 더 작아진 사회 ]


경험의 결이 희미해진 시대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해다.


스펙은 높아졌지만 자존감은 낮아졌다.

능력은 커졌지만 자기 자신을 대하는 감각은 서툴러졌다.

문직, 고학력자의 세계에서 이 모순은 더욱 선명하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약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직해지는 대신 이미지를 겹겹이 쌓는다. SNS는 이 허세의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지낸다"라는 말보다 "잘 지내 '보인'다"는 장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UC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SNS는 타인의 삶을 ‘상향 비교’하게 만드는 구조를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비교는 자존감을 약화시키며, 특히 성취 중심적 정체성을 가진 전문직·고학력 집단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김낙수가 보여준 마지막 선택은 특별한 울림을 남긴다.


그는 사회적 자아인 '김 부장'과 이별하며, 자존심은 내려놓았지만 자존감은 지켜냈다.


이 장면은 특히나 여운이 짙다.


우리가 평생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인 탓이다.


대부분이 오랜시간 미뤄온 일을, 끝내 해내는 이 장면에서

누군가는 부러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조용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한 편의 웰 메이드 드라마는, 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왜'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이렇게 쉽게 오해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빠른 오해 속에서 '왜' 자신을 더 깊이 잃어가는가.




사진 =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도가 맥락을 지배하는 시대.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정보처럼 다루는 시대. 그 안에서 '어떻게 이해하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였다.


이전 10화영화 <굿 뉴스>: 반쪽 세상만 보는 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