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퇴사 전 회고
오늘 1년 3개월 남짓 일했던 곳에서 떠나게 되었다. 현재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는데 아무래도 함께 일하는 팀 동료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곳은 엄연히 따지면 나의 두 번째 회사 인 셈인데 입사하면서부터 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기대가 있었다. 왜냐하면 소규모 스타트업이었던 첫 회사에서 대부분의 기획과 디자인 업무를 혼자 맡았고 고민의 실타래를 대부분 혼자 풀었기 때문이었다. 사수는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퇴사를 앞둔 이 시점에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했다. 구체적인 스킬이기보단 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마음가짐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듯하다.
내가 일하면서 만났던 팀 동료들은 각자 성격도,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다. 프로젝트 전체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을 함께 볼 줄 아는 점이었다.
PO나 서비스 기획자들이 프로젝트 일정 안에서 동료들의 일을 조율하고 들여다보는 일은 자칫 너무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해내기란 힘든 일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런 일을 잘하고 있는 동료들은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 분들은 단지 떠다니는 공기처럼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의 상황을 체감했다.(생각한다기보다 체감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그리고 상황마다 동료들에게 전파할 뿐이었다. ‘누군가 하는 그 일이 쉽게 보인다면 그가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동료들은 대신 “숲을 봐야 한다”라는 식의 당위적인 말을 불필요하게 달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진짜 몰입한 사람들이 가진 일의 태도를 배웠다.
그뿐만 아니다. 내가 만난 동료들은 정책 하나, 문구 하나가 서비스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같이 고민해주던 파트너였다. 디테일한 단어 하나에서 대화가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까지 넓혀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내 의견을 굳히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의견은 좋은가?'를 스스로 묻는 계기가 된다. (열심히 말하다가 서로의 논리에 설득돼서 각자 서로의 의견이 더 낫다고 주장해버리는 웃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디자인에서 늘 옳은 답안은 없다. 그러므로 항상 스스로를 납득할만한 논리가 필요하다. 내 경우 디테일을 두고 얘기하는 이 과정이 전체 문제와 해결책의 해상도를 높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끝난 뒤 내 디자인에 더 뾰족한 논리가 만들어졌었다.
동료들끼리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계속 쌓이면 어떨까. 아무리 좋은 회사일지라도 쉽게 지칠 것이다.
나와 동료가 더 잘 일하기 위해서는 순간 불편할지라도 이를 기꺼이 꺼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내가 피드백을 할 때 동료들은 이를 업무 피드백으로만 받아들여주곤 했다. 그럼에도 각자 개인적 감정으로 번지지 않게끔 노력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나와 동료는 각자가 해주고자 하는 ‘일의 모습’에 대해서만 말했다. 이 모습을 설명할 때 오해를 불러올만한 두루뭉술한 단어는 가급적 지양했다. 대신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담은 말을 건넬 때 더 효과적이었다. 이렇게 대화의 범위를 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치 않게 대화가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스파크가 튈 뻔한 감정의 터널을 지나 문제 해결에만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면 겪지 못할 경험이다. 물론 이렇게 깔끔한 결론을 맞으려면 서로가 자주 노력해야 한다. 또한 매번 만족할만한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부터도 이 부분에서 매 번 부족함을 느낀다. 대신 동료가 먼저 한 뼘 더 양보하고 한 발 더 해결에 앞장서준 덕분에 잘 이뤄질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연습이 쌓였을 때 내 옆의 동료를 믿으며 성장하게 된다.
나와 팀 동료들 모두 정말 달라서 좋았다. 일터에서 다르다는 말은 각자가 쌓아온 배경과 지식으로 인해 잘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방향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때 서로의 다름으로 충돌할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좋은 역할을 해주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이해하기 힘든 테크니컬 이슈는 아무래도 테크니컬 PM과 많은 대화를 나눠 본 동료를 통해 전달받는 쪽이 훨씬 수월했다. 대신 나는 그 시간에 오로지 사용성에 더 집중하는데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이렇듯 다름은 서로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다. 단편적인 예시 하나만 들었지만 이외에도 개발적 지식이 풍부한 동료, 데이터를 오랫동안 고민했던 동료, 늘 다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 등 모두 “뛰어난 다름”을 갖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팀 안에서 내가 부족한 부분이나 반대로 강점인 부분을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더~”같이 동료끼리의 우위 비교가 아닌 각자의 다름을 포개 놓음으로써 스스로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동료들 덕분에 나는 지금이 입사할 무렵보다 좀 더 나를 잘 알게 된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일이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매 번 쉽게 한 문장으로 말하기 힘들었다. 내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매 순간 정의한 그 의미도 조금씩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동료들에게서 배운 이 유용하고 생생한 일의 감각만큼은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