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여행 온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난 한국에서 학생이었고, 아일랜드에 와서도 다시 학생이 되었다. 수업이 끝난 오후 2시가 넘은 시각, 오늘도 머릿속은 이 생각으로 가득 찬다.
오늘은 뭐하지?
한국에서도 이 시간은 제일 따분하고 지루했다. 대학생이 처음 되었을 때 이 생각은 설렘과 기대감과 함께였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이라는 이유로, 오늘은 조금 피곤하다는 핑계로,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므로 등등 더 이상 새로움을 찾기보다 익숙함과 편함을 좇아가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왔을 때도 처음엔 모든 게 신기했고, 매일 이곳에 와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벅찼다. 하지만 일주일 그리고 열흘, 하루하루를 더해갈수록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익숙해지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바빴지만 이제는 조금씩 귀찮아져서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는데도 어제랑 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른 오후에는 제럴딘도 직장에 있고, 제시카도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무엇을 할지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강아지 로시가 혼자 있었다.
오늘은 로시하고 놀아볼까하고 다가갔는데 어찌 된 게 나한테 잘 오지도 않고 아직 경계를 하는 건지 좋아하는 과자를 내밀어봐도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무기력함이 로시에게도 전염된 건지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해서 눈앞에 과자를 내려놓고선 집 가까이 있는 공원이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지도로 가보지 않았던 근처 공원을 찾아보니 30분 거리에 공원 하나가 있었다. 아일랜드에선 가까운 거리를 가더라도 한국의 광역버스와 비슷한 금액이어서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게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걷고 보니 공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공원이라 하면 벤치나 분수대와 같은 부대시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아일랜드의 웬만한 공원들은 초록 잔디가 심어진 빈 공터에 가까웠다. 그래도 한낱 초록초록한 밭일지라도 길가 곳곳에 숨겨진 공원들은 내게 탁 트이는 느낌과 쉼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만약 집에만 있었다면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난 평소 일상과 여행을 굉장히 다른 모드로 사는 사람이었다. 일상에선 학교 수업 타임라인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1교시가 있는 날에는 아침 일찍 눈을 떴고 늦은 오후에 첫 수업이 있거나 공강인 날이면 하루도 평소처럼 빠르게 시작한 일이 없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는 그 누구보다 하루를 빠르게 시작하고, 부지런히 보냈다. 아무도 시키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해 나가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꽉꽉 채워 보냈다.
아무래도 여행은 일상에서 골라낸 시간이라 여겨졌고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는 생각이 컸다. 그에 비해 일상은 오늘을 흘려보내도 내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다른 시기 아일랜드에서 똑같이 1년을 지낸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서와 같이 매번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것에 화가 났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대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향한 꾸짖음이었다.
과연 매일매일을 여행하듯 지낼 수 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을 여행으로 대하기엔 결코 짧지 않지만 결국 이 긴 여행을 마치고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사실 매일매일 새롭고 재밌고 즐거울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과 아일랜드, 배경만 다른 일상을 보내지만은 않길 바라본다. 내가 처음 아일랜드를 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와 이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그 감정을 계속 떠올려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