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밑바닥 HR ②] How와 What으로 세분화까지
우리 조직은 반 년 사이에 12명에서 40명까지 컸다. 하지만 인사 관련 체계를 갖춰놓지는 못했기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고민도 많았다. 특히 일반적인 스타트업 방식대로 초반부터 우선 먼저 달려나가기 보다는 방향을 잡는 일에 가장 신경 썼다. 인사는 한 번의 오판이 치명적이기에 시작부터 어긋나면 멤버들이 신뢰하기 어려울테니까.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먼저 우리 조직을 들여다보면서 이유(WHY)를 도출하고 그걸 어떻게(HOW), 그리고 무엇을 해서(WHAT) 만들어 나갈 지 살피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먼저 4년차 스타트업으로서 현대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이라는 거대한 공룡들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고, 새로이 수십 명의 멤버를 맞이할 준비를 할 '골든타임'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어떤 누가 합류하든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지향점을 구성원과 파트너 모두가 체감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기업문화 구축에 있어서는 '리더와 멤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정체성'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10가지의 질문 항목을 구성해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관점이 투영됐다. 이 조직은 무슨 일을 '왜'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업의 본질부터, 그 멤버들의 개인적인 가치관까지 관통하는 키워드가 필요했다. 먼저 기업의 존재 이유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게끔 돕겠다'는 'Why'를 세웠고, 방법인 'How'에는 뷰티 콘텐츠와 크리에이터와 함께 만드는 브랜드, 우리만의 PB 제품, 뷰티 플랫폼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포함시켰다. 마지막으로 'What'에는 현 시점과 미래에 전개할 비즈니스를 고려했다.
사업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뷰티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의 연결을 통해 고객에게 닿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특성과 '서로의 성공을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경영철학까지 더하니 자연히 '연결'이라는 핵심 키워드 추출로 이어졌다. 물론, 사업 영역은 처음부터 시작한 내용을 근간으로 삼아 이어갈 수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 확고한 기준을 정한 후에, 부수적인 과업에 그 키워드를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다시 그 키워드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 비전을 말하고 이에 걸맞는 핵심 가치와 동료상을 정하기로 했다. 짐 콜린스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Good to great"로 큰 틀을 잡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인 '이타적 이기주의'와 '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설정했다. 혼자만이 아닌 팀의 성취가 전체 조직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다시 개인의 성장으로 돌아와 위대함을 향해 선순환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좋은 철학이 현실이 되려면 결국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실제 구성원들이 개인의 성과보다는 팀워크로, 동료를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는 태도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동료상으로 '주도적 자세, 원활하고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프로다운 책임감'을 정의했다. 다음 단계로는 우리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기업문화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문화에 대해서 각자의 정의는 다르지만, 우리는 '구성원들의 행동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직의 미래까지 담은 비전과 핵심 가치, 동료상 등을 정의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 인재를 모셔오는 프로세스를 정하고 초기 레벨의 평가 제도나 일하는 방법과 문화 내재화 방안 등 '선례와 습관을 만드는 지점'이라고 봤다. 그렇기에 기존에 있던 다른 팀들의 사례에 더해 진정 우리 모습에 가깝다고 느끼는 내용으로 열 두가지 행동 방침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어렵게 한 곳으로 모은 내용들이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남아 실재하지 않는다면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방향성과 철학의 지속을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분명한 액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당 덕목들을 평가 기준에도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최종 고객인 소비자 뿐 아니라 조직을 가장 먼저 겪는 내부 고객, 즉 구성원에게 해당되는 내용들도 여러 가지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라는 개념을 문장으로 옮김에 있어 몇 가지 집중한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 행동 양식 뿐 아니라 일하는 방법과 직결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이 워딩들 마저도 조직에 맞춰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몇몇 인사전문가들은 기업 문화란 애초에 누군가 담당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떤 툴을 쓰고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는지만 봐도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곧 문화라는 뜻이다.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화라는 것이 글로 적어놓는다고 저절로 구현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오히려 조직의 역사 속에서 리더들이 보여온 언행과 성향 그리고 의사결정들이 누적되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허용되는 기준점을 나타내는 말 아닐까.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는 이러한 부분에 체계적으로 접근할 여력이 없었고, 이전 기록이 남겨져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상황이였다.
그렇기에 문화를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진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물로 대해주는 약간은 관대한 마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은 있어도 틀린 생각은 없다는 마음으로 구성원끼리 멈추지 않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맞춰가는 그 과정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자고 합의했다. 아무리 초기 세팅이 잘 되었더라도 브랜드 경험과 조직 문화에는 완성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 많은 동료를 모시러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미션은 '리크루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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