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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Oct 14. 2023

Hoc est corpus meum

이것은 내 몸이라

1.        


하루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오늘도 오늘의 계획을 잠들기 전에 세워뒀지만 여지없이 빗나갔다. 병원에 못·안 갔고 항우울제, 항불안제, 리튬, 수면제가 없고 마음은 헛헛해서 좀 전에야 밥을 먹었고 체했고 씻어야 하는데 힘이 없고 수면제가 없으니 어쩌면 지난번처럼 고생할지도 모르겠고 사람은 이렇듯 알면서도 잘못을 반복하고 술을 마시고 기절하려던 계획도 오늘 중에 진행될지 의문이다. 자신을 파괴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징후는 뚜렷해서 힘겹다. 마음은 동동 발을 구르는데 몸은 한없이 가라앉을 뿐이다. 불안이 고무줄처럼 늘어지며 찢어질 듯 휘어진다. 내일은,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계획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한다. 마음먹은 대화를 1주일을 미루고 미뤄서 겨우 이야기 나눴다. 하면 금방 끝나는 안부 메시지 같은 걸 나누려 할 때마다 물속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낀다. 아니 꿈속에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겹다. 잘 지내냐는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을, 만남을 약속하는 것을 1주일을 미루고 미루고 미뤄서 겨우 톡 한다. 만나면 또 즐겁게 잘 지내면서 모든 게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움직인다, 그게 몸의 일이든 마음의 일이든...     


바람이 차갑다. 가을비가 내렸고 이제 비가 내릴 때마다 점점 더 차가워질 것이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봄에 내리는 비와 정반대로 이어진다. 가을에 비가 내리면 그만큼 볕도 시리게 변하니까 낙엽진 나무처럼 쓸쓸해지는 것이다. 메말라 가는 손이 거칠어지고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면 마른 얼굴이 이내 슬퍼지는 것 같다. 땅에서 수분을 끌어올리며 봄을 준비한다는 둥의 헛된 상상으로 억지 위로는 하지 말자. 꽁꽁 언 공기를 맨몸으로 버티는 생을 보며 생명을 찬탄하는 언어는 무책임하고 잔인하다. 다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메마르구나. 시리구나. 버티는구나. 버티느라 퉁퉁 부었구나. 퉁퉁 부어서 꽝꽝 얼었구나.     


십일월이 되면 그런 풍경을 보는 게 참 힘들었었다. 찬란한 단풍이 지고 비가 내릴 때마다 벗겨지는 가로수를 보는 게, 앙상하게 겨울의 칼바람을 맞는 게,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게 매번 힘들었었다. 남쪽으로 내려와 가장 기뻤던 것은 십일월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이 섬은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불타오르는 단풍도 볼 수 없지만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앙상한 가로수들을 볼 필요도 없다. 사시사철 푸른 가로수는 낙엽을 뿌리면서 새 잎을 틔우고 눈 속에서도 시퍼렇게 초록이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날카로운 얼음의 그것이 아니라 거인의 큰 손 같다.  큰 손으로 작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은 그래서 가을에도 겨울에도 살갗을 저미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달 육지에서 오랜만에 본 단풍 진 가로수 길에 그토록 황홀했다가도 내려와 푸르게 울창한 가로수를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무서운 십일월은 상관없이 다가온다.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따뜻하길 바라며 남국을 꿈꾸지만 그래도 이 나라 남단에서 시퍼런 나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한다.  무너지지 않고 감사해야 한다.






2.      


창을 모조리 열고 서늘하고 맑은 공기와 볕을 바라본다. 따뜻한 전기장판과 솜이불과 차가운 바람이 깊은 숨결을 통해 몸속으로 서로 뒤섞이며 가라앉았다가 날숨으로 밀려 나간다. 회복기는 묘하게 황홀하다, 앓고 난 뒤에서야 몸을 긍정하고 마음을 긍정하는 이 어리석음을 평생 반복하면서 회복기일 때에서야 겨우 고통의 폭과 깊이를 깨닫고 무사히 건너왔음 안도한다.      


생은 나를 볼모 삼아 마음을 사로잡고 집요하게 가스라이팅을 하며 불법을 공모하고 죄악을 강제한다. 그 유혹을 견딘 끝에서야 비로소 평안을 얻게 만드는 사탄 같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던 예수의 대답은 마지막 성찬에 떡을 나누며 “이것은 내 몸이라(Hoc est corpus meum).”라는 말로 완성된다. 사탄의 유혹은 광야의 사십일만이 아니라 평생이었을 터이다. 그 아름답고 사악한 힘에 압도당하지 않은 이가 건네는 헌신은 고요하고 부드럽게 스며들고 마침내 사람 하나하나의 생으로 파고들어 일체화를 완성한다. 압도한다는 말조차도 무색한 완전한 승리, 완벽한 동일.     


해서, 나는 이 말을 몸에 새기고서야 언어의 현현玄玄이 몸에 현현顯現됨을 보았다. 삶은 다르게 치환된다. 내가 거부한 떡은 내가 받아들인 떡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나의 피를 보면서 황홀해하던 시간들은 이제 저편 너머 다른 세상에 머문다. 마음속을 소요하며 내적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요즘은 가끔씩 아름답다. 새롭게 일으켜 지평을 넓혀가는 풍경에 그늘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대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내 다정한 친구들이 날아오르고 다가오고 유영하는 곳. 그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려 했던 마음을 거두고 하나로 결합된 지금이야 말로 그토록 오랫동안 내가 바라왔던 세상 풍경이란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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