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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Jul 26. 2023

비눗방울 1- 기쁨에게

3월 어느 날, 숨 막히게 답답한 일상을 박차고 나가 달리고 걷기 시작했다. 나가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기에 그날 사소했던 이 행동은 하나의 사건으로 작동했다. 근처 여중 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지난 1여 년간 무너진 몸을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달려 나가면 땅이 잡아끄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풍선처럼 부풀지 못하고 좁아진 채 헐떡이는 폐가 아우성쳤다. 심장 고동은 공황장애가 일 때 빼곤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굳이 상기했다. 형편없어진 체력을 받아들이고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그래도, 이제 시작이라는 감은 강하게 올라왔다.


그 후 비가 종일 내리거나 몸살이 심하게 나지 않는 이상 나가서 운동을 지속했다. 처음에는 걷기 중심에서 다음에는 달리기 그다음엔 근력운동 그다음엔 요가를 추가했다. 기본적으로 오래 요가를 했던 몸이고 달리기를 좋아했던 터라 매일매일 다른 운동을 더 해가는 기간이 짧았어도 버틸 만했다. 근육통이 이어지는 나날을 보냈지만 즐거웠다. 크런치 100개를 해내는 게 벅차서 속상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크런치 300개와 레그레이즈 120개와 푸시업 80개를 해낼 수 있게 됐다. 물론 행인레그레이즈 20개도 추가 됐다. 스스로가 뿌듯했다.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날수록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우울증이 급격하게 몰려오면 서둘러 나가서 뛰었다. 어떨 때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 울면서 뛰고 마음을 잊기 위해 혹사를 감행했다. 몸을 괴롭히면 마음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참하게도 그 방법은 틀렸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괴롭힌 시간은 독액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닌 것처럼 몸을 지배했다. 마음의 통증과 몸의 통증이 서로 만나며 이틀을 무섭게 앓았다.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은 모조리 털어 넣고도 앓고 앓았다. 앓고 있는 내내 무서웠다. 새해가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된 몸과 마음의 병이 몇 달을 끌고 가서 마침내 병 외엔 나란 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 시간을 되감기 하듯 산다는 것은 형벌과 같았다. 아프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후회가 거의 없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정말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을 꼽으라면 지난 몇 달도 포함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저가 2권이나 출간되고 북토크도 하며 기뻤던 시간이 그 시기와 엇비슷하게 공존했지만 그걸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을 만큼 아팠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견딜 만해지자 바로 가방을 챙겨 카페로 다시 나왔다. 며칠 전부터 스스로 약속한 글쓰기를 위해서였다. 글을 쓰고 나면 일어나 운동을 갔다. 무너지고 싶지 않다, 이 생각에 골몰하며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운동 가방을 챙겨 운동화를 갈아 신고 근린공원으로 갔다. 스스로를 부스팅 하기 위해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들으며 미뤘던 운동을 시작했다. 이틀 아파서 쉬었다 해도 지난번 마지막 기록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근력운동을 감행하고 하체 운동의 개수를 150개에서 200개로 늘렸다. 하나에 몰입하면 과도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습성은 이런 데서도 발휘됐다. 목표가 모든 근력 운동 횟수 1,000개에 있다 보니 그 목표를 향해 자꾸만 돌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는데도 이 성질은 제어가 안 되곤 했다. 아니 제어하고 싶지 않다는 게 정직한 대답이다. 먹잇감을 포착하고 집중해 접근하여 순식간에 제압하는 육식동물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아름다운 근육이 만들어내는 유연하고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인해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때였다. 격한 운동을 끝내고 마무리로 몸을 풀고 있는데 방울방울 투명한 구가 공중을 떠돌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속에 아장아장 걷는 아가가 아빠로 보이는 남성과 함께 권총형 비눗방울 기구로 놀고 있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방울들은 이내 내 주변에 가득 몰려왔고 마치 물속에서 물방울들을 만난 듯 순식간에 환경이 변해버렸다. 생각이 멈추고 그 광경을 홀린 듯 바라봤다. 아아…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연이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들이 터트려진 비눗방울 개수만큼 공간을 메우고 퍼져나갔다.  하나의 사건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게 파고드는 기쁨들을 누리기 위해 멈추어 눈감고 온몸으로 만끽했다.


목표를 수정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원하는 대로 1,000개씩의 훈련 목표를 몇 달 안에 완성하고 유지할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그러느라 잊어버린 것을 머릿속에 새겨야 했다. 한 달 여전 문득 나가 달렸던 그날의 환희, 그 기쁨, 그 단순한 감동을 잊으면 안 되었다. 운동을 이어 나가고 글쓰기를 이어 나가면서 지치는 어느 날이 오거나 과몰입하는 어느 날이 와서 주객전도가 시작되면 이날의 비눗방울을 떠올려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터져나가던 웃음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아마도 나는, 나 자신에게 덜 미안해하다가 언젠가는 음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 달려 나가던 그날로 돌아간 순간, 비눗방울처럼 투명한 기쁨이 방울져 흩어지고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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