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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Jul 12. 2023

여름의 눈

볕이 뜨겁다. 뜨거운 대지 위로 공기는 순환하며 바람을 일으킨다. 따가운 햇살을 빗겨 미끄러지는 바람의 감촉에 잠시 눈을 감는다. 세상은 온통 소란 속에 있다. 사람들 말소리,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 오토바이가 내지르는 배기관 소리, 버스가 멈추며 내는 한숨 같은 기체 소리. 그 소리들을 감지하며 스쳐 가고 오는 바람의 살랑거림과 햇살의 따가움을 동시에 느끼면 감각은 곤두서고 충만해진다. 날카롭게 서는 감각과 별개로 감정은 평온해진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다시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끈적하게 땀이 배어 나온다. 여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여름이 좋았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동네로 골목으로 몰려나와 뛰어놀아도 그 소란을 어른들이 나무라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저녁을 먹고 다시 어슬렁거리며 골목으로 나와 우리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다. 가끔은 집안일을 마친 엄마들이 각자의 집 대문 앞에 나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우리들의 놀이를 지켜보곤 했다. 땀과 먼지로 새카맣게 된 채 엄마 손 잡고 돌아와선 서둘러 씻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낮에 충분히 놀았던 만큼 방전된 몸은 서둘러 충전을 가동했다. 선풍기 한 대로 여럿이 모여 잠자리에 들어도 더운 줄도 모르고 아침까지 땀 흘리며 잤다. 방학이 되면 아침을 먹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방학 숙제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오직 놀이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 시간들.


어느 여름날, 늘 조용히 책을 읽는 언니를 관찰하다가 왜 책을 읽는지 궁금해졌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도록 그림 없는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림책조차도 다양한 그림을 보는 걸 더 즐겼다. 이를테면 인어공주라 하더라도 출판사별 삽화가 다 달라서 그걸 비교해서 바라보는 기쁨이 컸다. 지역 도서관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종종 같은 제목의 다른 출판사 동화를 빌려와 그림 구경을 했다. 그런데 언니는 글자가 빼곡히 들어찬 책을 읽었다. 한 페이지에 한 단도 아니고 두 단도 아니고 세 단으로 나눠 작은 글씨로 가득한 책, 아주 가끔 삽화가 들어있던 책을 세상 가장 쉬운 일인 것처럼 읽어 내려가고 새 책을 꺼내 읽어 내려가곤 했다. 언니가 빠져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터인데 실행해 보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임이 분명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어느 날 전집 중 아무것이나 꺼내 들었다.


내가 읽은 첫 장편은 <로빈슨 크루소>였다. 읽자마자 나는 글자의 세상으로 침투해 갔고 넋을 놓고 읽었다. 상상할 수 없는 또는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글자들이 촘촘히 박힌 종이 속에 존재했다. 엎드린 자세로 읽다가 허리가 아프면 앉아서 읽었다. 너무 조용히 있었던가.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곤 웃다 나갔다. 그것도 귀찮았다. 나와 로빈슨의 세상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했다. 오빠가 옆에 와서 툭툭 치며 밥 먹으라고 부르신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맛도 없었다. 어서 이것을 읽어서 끝을 보고 싶었다. 오빠는 왜 부르는데 대답 안 하느냐고 했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옆에 오는 것도 몰랐다. 몰입의 기쁨을 알게 된 4학년 국민학생은 그 해 다독상을 받고 매년 졸업 때까지 다독상을 독차지했다. 1년에 몇백 권을 읽는 나를 따라올 친구가 없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너무나 기뻤다. 하루에 몇 권이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 시간에 몰래 독서하는 게 일상이었던 터라 하루가 온통 독서로 가능하다는 건 짜릿한 기쁨이었다. 세계는 책마다 달라서 두꺼운 책을 속독해서 읽어 내려가며 하루에 두세 번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세상의 일상을 누렸다. 골목으로 뛰어나가 놀지도 않았다. 잠도 자지 않았다. 밥 먹는 게 너무 싫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면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책만 읽었다. 거기에서만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속독하며 읽은 수많은 책들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어린 시절에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을 읽었기에 줄거리만 파악할 뿐인 게 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국민학생 시절, 아 나는 헤르만 헤세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구나 하며 취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오랜 시간 도스토옙스키였다가 토마스 만으로 넘어간 것은 대학 시절부터였다. 교통사고가 심하게 나서 뇌수가 거칠게 흔들린 후 기억의 일부가 삭제되고 엉키고서는 더더욱 내가 뭘 읽었던가 하고 알지 못하며 살았다.






 요즘은 서사를 잘 읽지 않는다. 아니 읽고 싶은데 지난해 <토지>를 완독 한 이후 잘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맞겠다. 읽어야 할 책들은 너무도 많고 내 지식의 바탕이 되어줄 책을 우선순위로 고르다 보면 소설은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름이 오면, 여름이 되면 자꾸만 마음 한쪽이 간지럽고 끓어오르며 두꺼운 소설책들 몇 권씩 싸 들고 산사에 가서 독서만 하고 오는 로망에 빠져들곤 한다. 묵언하며 독서하며 가끔 풍경을 듣고 가끔 산책하며 오롯이 나와 작가의 세상에 잠겼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일을, 여전히 꿈꾼다. 아마도 그 일은 현실에서 완벽한 차단막을 내려 순전한 나를 보호하고 회복하는 시간이 될 터이다. 열망 같은 꿈을 꾼다. 전생 같은 꿈을 꾼다. 언젠가 이생에서 반드시 해내고 싶은 꿈을 꾼다. 여름이 자꾸만, 조금은 슬프게도 나를 붙잡고 설렌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을 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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