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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Jul 05. 2023

날 선 웃음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많이 웃었고 거의 매일 글을 썼고 계획한 일과대로 대체로 흘러갔다. 민주대며 시간을 끌던 식사도 잘 챙겨 먹었고 간동하게 가방을 정리하고 사뜻하게 차려입고 카페를 찾았다. 미추룸한 가로수들은 바람과 볕을 받아 흔들거리면 그 아래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미리 앱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오래 게으르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나를 통제하는 데 기쁨을 느꼈다.


마음이 서벅거리기 시작했지만 그걸 돌보고 싶지 않았다. 변함없이 나를 찾아오는 매일의 우울을 외면했다. 약을 먹고 있으니 괜찮다고 여겼고 대체로 괜찮았다. 공들여 쌓은 일상의 평온은 어떻게든 유지돼야 했다. 그러니 가끔 돌부리에 걸려 뒤뚱거리듯 거리적 거리는 통증은 그처럼 잠시 뒤뚱거리다 본디 자세로 돌아오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부드럽게 흘러갔다.


노동절이 되어 스스로 글 쓰는 노동자라 여긴 만큼 다른 날에 조바심 내며 이룩한 일정을 모조리 내려놓고 기념하며 쉬었다. 침대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며 과자와 우유, 커피를 마시며 때구루루 굴러다녔다. 오랜만에 긴장을 풀어냈던지라 휴식이 달큰했다. 종종 이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문제는 그날의 오후로 갈수록 짙어지는 무기력에 있었다.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은 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가 있었다. 시간이 도약하는 것 같았다. 집중력이 사라진 마음으로 커피를 내려놓다가 여러 번 놓쳐 바닥과 사이드테이블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자신에게도 서분서분해지자고 약속했기에 이 상황 자체를 웃으며 정리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지라 더더욱 웃어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게 바자이었다. 민춤한 행동에 따른 결과에 몽총해진 마음은 괴까다롭게 날뛰었다.


기진맥진해져 다시 기대어 이번에는 계속해서 먹어댔다. 큰 봉지에 작은 봉지로 나누어진 젤리들을 몽땅 꺼내어 계속해서 뜯어먹었다. 상자째로 다쿠아즈를 가져와 한입에 밀어 넣었다. 1L 우유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숫가루를 채워 넣어 마구 흔들어 통째로 들고 마셨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이 밤 2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집은 순식간에 엉망이 돼 있었고 샤워조차 하지 않았는데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것도 미루며 무기력에 완전히 침략당해 버렸다. 순간 심장이 흔들렸다. 심장을 시작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미묘한 통증에 몸을 구부려 모아 말아 붙였다. 그제야 나는 나의 상태를 인정했다.


온전한 휴식을 바라고, 평소에 쉬지도 못하며 불안하게 보채던 마음을 오랜만에 겨우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니어서 또 슬펐다. 우울은 그림자처럼 주위를 서성이다가 긴장을 놓는 순간을 포착하여 물어뜯는 맹수 같았다. 이 맹수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몹시 슬펐는데 나에게 속해 있는 어떤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그 통제가 압도당할 때, 비참함은 생각보다 큰 상처를 내곤 했다.



나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팽팽하게
 곤두선 신경선으로 경계하며
신호를 읽어대는 적敵이었다.
서로를 소외하고서야 안심하는
내면이라니. 슬픔과 상처는
돌고 돌며 생채기를 내는
무한반복 속에서 안온했다.


다음 날 오후가 늦도록 침대에 엎드려 멍하게 보냈다. 약속이 취소되었고 그 상황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불안이 슬픔을 이기려 들었다. 무기력을 찢고 들어온 불안이 나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불안이 이토록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기꺼운 마음으로 불안을 잡아당겨 안았다. 일어나 밥을 지었다. 레토르트라 하더라도 찌개를 데우고 두부를 잘라 넣고 냉동실에 소분해 둔 야채를 잔뜩 집어넣고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고 소분한 샐러드를 꺼냈다. 배불리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샤워했다. 오랜만에 귀걸이도 끼고 집을 나서니 저녁 18시이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에 앱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거의 내 지정석이 된 구석 자리에 노트북을 켰다. 이어폰을 끼고 오늘의 선곡을 틀었다. 첫 문장을 만들기 위해 서성였다. 그리고 마침내,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삐걱거리며 글자가 이어지고 문장이 이어졌다. 다시 나는 나아지고 있다. 보초를 선 내 불안이 칼날 같은 마음으로 짙은 해무 같은 우울의 장막을 찢어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저 우울은 발이 땅에 닿지 않듯 살아갈 조증의 시간을 끌어당겨 내려줄 것이다.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래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제각각의 자아를 가진 듯 도사린 나를 통째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안도한다. 날 선웃음이 즐겁게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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