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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Jun 14. 2023

우리는 나쁘지 않다

비가 종일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은 추운 날보다 환기하기가 어려웠다. 밥을 해 먹고 창을 열어 놓으면 방충망에 걸려 맺히고 들이치는 빗방울에 자꾸만 그닐거려서, 바라보면 바잡은 마음이 들었다. 자글거리는 심정으로 창가를 서성이다 창문을 닫으면 냄새는 여전히 집안을 맴도는 것 같아서 또 괴로웠다. 오늘처럼 열이 나서 앓는 날이면 감각이 민감해져서 자신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아침이 밝아오니 흐렸던 기운은 거짓말처럼 흩어지고 오직 짙푸른 하늘과 가로수가 하루를 알려줬다. 창을 열고 바라보며 한포국 해졌다. 단순할 만큼 날씨에 여전히 지배당하는 자신을 알아채며 소리 내 웃었다. 어떠랴 싶었다. 이런 단순함이 개조해야 할 만큼 나쁜 건가 생각하며 자꾸만 보채며 밀고 나가는 사회에서 다시 한 발을 빼고 멀어지고만 싶었다. 군중심리에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산이었다. 나는 이 사회가 요구하고 욕망하는 ‘올바름’에 스스로를 꿰맞추며 깎아내고 늘리느라 기진맥진했다.


지난 하루는 아팠다. 아팠기 때문에 쉬는 게 당연하고 아픈 다음은 회복기가 있어야 하는 걸 잊고 살았다. 아픈 게 눈치 보이고 죄가 되는 게 사회생활이었다. 자주 아픈 것은 자기 관리를 못 하는 낙오자의 모습이라고 주입했다. 돌이켜보면 자주 아픈 이유는 과도한 업무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객관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쉽게 인상에 지배받고는 했다. 아픈데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파서 비실대서 일을 못 쳐낼까 걱정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우리나라에서 번아웃되는 직장인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조직 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조직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버텨보아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조직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지금은 나를 옥죄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은데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습관이 돼 버린 관점은 수시로 일상을 파고들어 뒤흔들어 댔다. 아프면 약을 먹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식사를 하고 쉬어줘야 하는데도 어제 나는 어땠는가. 샤워를 마치고도 외국어 학습 앱에 과몰입하느라 다시 열과 통증에 시달렸지 않았는가. 건강한 식사와 여유로운 독서를 대하는 태도에는 민주대면서, 보다 시선을 잡을 일에는 열광적이지 않았던가. 사회가 말하는 객관적 지표에 가까운 일을 하여 결과를 생산하는 데에 기준 삼아 움직이지 않았던가. 자신의 목소리에 정직하게 대답하고 있다 여겼지만, 알고 보니 순 잔미운 짓만 골라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일본 드라마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를 보았다. 거기에 대강 이런 대사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타당한 설명인가가 아니라 최선의 설명인가 하고, 물어야 한다.” 아, 하고 잠시 탄식했던 것 같다. 지금껏 오래 그 ‘타당성’이라는 말에 매몰되어 타인의 시선에 기대었다. 그것이 올바름이라 여기고 나는 나를 설명하려 애써왔다. 하지만 ‘최선’이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타당하지 않은 나를 두고 죄책감에 흔들리는 동안 나는 나의 ‘최선’을 외면해 왔다. 다시 물으면 간곡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래, 최선을 다했어. 이것만은 진심이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성에 차지 않고
어떨 때는 누군가의 온정에 기대어 버텨온
세월 내내, 정말로 나는,
망가지고 엉망인 모습인 그대로 ‘최선’이었다.


비가 내리면 또 자글거리며 창가를 서성이고 볕이 나면 한포국 해져 창을 열어젖히고 몸을 반쯤 빼내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지낼 것이다. 비가 내리면 자주 아프고 열이 나고 우울증이 파고들고 볕이 나면 그대로 서글퍼져서 웃다가도 울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사회는, 관계는 틀렸다. 매번 최선으로 무너지고 최선으로 일어서 왔다. 매번 애써봐도 제자리일 뿐인 생이었지만, 어떨 땐 뒷걸음치는 생이었지만, 나는 최선이었다. 누가 내게 나쁘다 대답할 수 있는가. 너는 그래서, 나빴던가. 아니다. 결코 절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저 질문을 하며 아프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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