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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Jun 11. 2023

손톱깎기와 중도, 귀신의 길

손톱을 깎는 일을 귀찮아한다. 예쁘게 손을 다듬거나 손톱에 다양한 색과 무늬를 넣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아지고 있어서 예전보다 화려한 손톱에 대해 너그러워진 시선이 대중적이라 하더라도 손톱 깎는 일조차 성가셔하는 입장에선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도 큰 행사에 해당했다. 좀 격식 있고 단정해 보여야 하는 압박이 있는 약속이 잡혔을 때라야 연한 빛으로 손톱을 정돈했다. 그러니까 내게 손톱을 예쁘게 하는 업무는 연중행사에 가깝다고 하겠다.


손톱이 예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 손톱은 영양 부족의 지표라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표식이다. 핑크빛이 도는 윤기 있고 매끈한 손톱을 가졌던 기억은 아이 때로 한정된 듯하고 울퉁불퉁한 세로선이 항시 도드라지고 가끔은 중간이 움푹 패기도 하고 가끔은 찢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흰색 무늬가 올라오기도 하는 등 캠퍼스가 따로 없다. 와중에 흰색 무늬가 올라올 땐 초승달 같다며 좋아하기도 하다가 좋기도 하겠다 혼잣말도 한다. 정작 손톱을 관찰하는 시기는 손톱 주변 거스러미를 잡아당겨 피를 봤을 때 정도나 손톱으로 자기 살을 할퀴다 못해 살점이 움푹 패어 피가 났을 때 정도니 대부분 피가 났을 때나 들여다보는 정도라 하면 맞겠다.


밤에 손톱 발톱을 깎으면 귀신이 그걸 먹고 다가와 죽는다던가 그런 전설도 있는 듯하지만, 사실 손발톱 깎을 시간이 낮에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드물지 않을까 싶다. 낮은 살아 움직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 낮엔 나름 해야 할 일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어 손톱이 살갗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더라도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하루의 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정갈히 하고 나서야 비로소 손톱 너도 정리해 주겠다 이런 마음이 생긴다. 앙칼지게 존재를 알리던 손톱아, 안녕? 잠시 수줍게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이별은 시작된다. 너는 깎여나가고 내 피부는 당분간 평화를 얻을지어다.


그 평화의 기간을 늘리려면 최대한 짧게 자르면 좋을 텐데 그건 불가능의 영역이다. 예쁘게 손톱 정리를 못 하면서 우습게도 바싹 자르지도 못하는 게 예쁨이 귀찮음의 영역이라면 바싹 깎는 건 고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살 가깝게 짧게 자르면 이 손톱은 또 항의한다. 손톱 밑이 찢어지고 피를 내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아니 너는 왜 길어도 짧아도 이렇게 피를 보고서야 직성이 풀리냐, 들여다보고 물으니, 대답이 가관이다. 중도의 길을 걸으라는 계시로 여기란다.


하여 어제도 나는 겸허히 도를 닦는 마음으로 손톱을 깎았다. 중용, 중도 비슷한 말들을 되뇌며 지나치게 길지도 짧지도 않아 피 보는 일이 없을 만큼의 적당함을 찾는 여정의 길을 걸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는 진심 침잠과 몰두의 무아지경, 그 완벽한 몰입의 상태로 손톱깎이에 임했음을 선언한다.


아, 그러하다. 수도의 길과 득도의 길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에 깃들어 참으로 신묘하게 사람의 깊이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잠시지만 깊이 있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마무리 정리조차 완전했다. 침실에서 손발톱을 깎았지만 잘려 나간 손톱 발톱 부스러기들은 거실 휴지통에 버렸다. 물론 귀신이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 그런 건 아니다. 귀신을 논하는 건 수도자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내 청결의 측도를 높이 잡아둔 터라 몹시도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 가위에 눌리지도 않았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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