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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ug 16. 2023

일류가 되는 법

어제는 커피를 두 잔 쏟았고 오늘은 텀블러째로 물을 모조리 쏟았다. 어제까지는 웃고 넘겼는데 오늘은 기어이 짜증이 났다. 짜증이라는 감정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도 좋아하지 않는다. 쾌와 불쾌로 크게 나눠지는 감정의 결에서 불쾌로 이어지는 감정을 누군들 좋아하겠냐만 감정 자체가 소거된 채 살아가길 간절할 만큼 바라는 입장에서는 특히나 불쾌를 접하면 좀 더 당황스럽다.


분노의 감정일 경우에는 그나마 받아들이기 괜찮다. 감정이 격하긴 하지만 그만큼 선명해서 의외로 차분해질 수 있다. 한숨 깊게 들이마시고 원인을 살펴 판단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재확인한 후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하면 된다. 짜증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자잘하게 긁어대는 이 감정은, 마치 손끝에 박힌 잘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신경을 곤두서게 하면서도 해결은 어렵다. 무엇보다 상황도 심각하지 않아서 귀찮은 걸 해야 하는 정도일 때가 많다.


분노는 분명히 목표지향적 감정이다. 그게 자신이든 타인이든 아니면 사회든 국가든 인류이든 확실한 방향성을 갖는다. 분노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다. 잘못된 방향으로 분노라는 강한 감정을 쏟아부으니 그것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때가 허다하다. 해서 바르게, 제대로 분노하라고 말들하고는 한다. 말이 쉽지, 그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자신과 상대를 살피고 분석하고 정리한 후 내뱉어야 하는 감정이라서 우리는 순식간에 몰아붙이는 강력한 감정에 점령당해 분간 없이 내지르고 만다. 불행은 여유 없는 상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분노는 제대로 훈련하면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물론 타고나길 잘 조절하고 잘 분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범인에 불과한 우리는 애써야 한다. 해서 분노를 다스리는 사람, 정확히 분노하는 사람, 명석하게 분석된 분노를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짜증은 어떠한가. 짜증이라는 감정은 목표지향적이지 않다. 원인은 있지만 그 이유로 불쾌라는 감정을 갖기엔 애매한 근거를 갖는데 자신이든 상대든 이 감정은 하찮음에서 비롯된다. 실수한 자신에 대한 하찮음, 업무 이해도가 낮은 직원에 대한 하찮음, 사회적약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막말을 쏟아붓는 언중들에 대한 하찮음, 누군가 다칠 수도 있는데도 길빵 담배를 피우며 걷는 사람에 대한 하찮음, 임산부석에 굳이 앉아서 가는 사람에 대한 하찮음, 그걸 지켜보며 개입하려 하니 귀찮거나 피곤하거나 오히려 해를 입을까 입을 다물고 가던 길 가는 나에 대한 하찮음. 눈치챘겠지만 이 하찮음은 상대를 향한 것처럼 적혀 있지만 기실 자신을 향한 감정이다. 자잘한 듯 보이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에서 우물쭈물하며 기분 나빠하는 자신을 향한 감정, 짜증.


그렇다 보니 타인을 향해 짜증이라는 단어를 쉽게 올리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금 주춤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 상대를 하찮아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중심에는 자신의 우월함을 믿고 싶어 하는 심리를 기반으로 초점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심리상태, 타인을 탓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겁한 언어다. 자신을 향해 “짜증 나!”를 말하는 것도 별로다(나는 내게  잘 외치는 편이다. 반성). 자신을 하찮게 여겨서 얻는 건 무엇인가 말인가. 그저 무력함밖에 더 있겠나. 무력함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지 못한다. 주저앉아 가시 같은 감정에 찔리는 것 결국 자신일 뿐이다. 짜증은 어떻게든 자신을 향한 불쾌의 감정이다. 타인에게 전가해 보려 해도 그건 자신을 지배하는 감정이고, 나에게 말해보아도 그건 내 감정일 뿐이다. 사건은 일어났고 해결하면 그만이다. 감정은 스쳐 지나가도록 두자.




웃는 사람이 일류라는 글이 적힌 사진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표현이 재밌어서 웃었지만, 그 기백만큼은 진심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은 분노든 짜증이든 불쾌의 감정이 들어선 자리에 적어도 자기 파괴적인 생각과 상태에서 물러서는 여유를 만들어 낸다. 힘겨운 상황과 상태를 들여다볼 첫 순간에 웃음이 들어서지 못하면 여유롭게 입체적으로 살피기 힘들어진다. 조급한 심정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면 힘들어지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평생 일류 비슷하게도 살아본 적 없는 내가 일류가 되는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게 웃음이라면, 애써볼 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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