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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ug 23. 2023

슬픈 더위

아침에는 선선한 바람이었다. 볕은 따사로웠지만 바람이 서늘해서 몸에 두른 모든 것을 벗어내고 하늘 아래 서 있으면 귓불과 목덜미, 겨드랑이, 배꼽, 오금을 지나 햇살과 바람이 고루 깃들 것 같은 날이었다. 눈을 감고 모든 소리가 소거된 듯 바람을 맞고 볕을 맞았다. 잠옷 소매 아래 소름이 살짝 돋았다. 문득 자연에 가까워진 착각이 들었다. 눈 감은 채로 잠시 더 있으면 다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요란하게 달려 나가는 바이크 소리가 아니었다면 아침 고요를 더 충만하게 누릴 수 있었으리라.


집 안 정리를 하고 책을 정리하고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길로 나서는 시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정오를 막 넘긴 햇볕은 절정이었지만 공기는 청량하게 흘러 물장구치듯 바람이 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늘이 아니라 볕에 서 있었다. 축복처럼 내리는 빛살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부시지만 않았다면 두 눈 가득 해를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카페는 모든 폴딩도어를 닫은 채 서늘했다. 혹시나 해서 두꺼운 롱카디건을 걸치고 왔는데도 싸늘한 기운에 잠깐 콜록거렸다. 오기였을까? 선물 받은 쿠폰으로 빙수를 시켰다. 앙증맞은 크기의 그릇이 나왔다. 조금의 언 과일 조금의 시리얼 조금의 연유와 2/3는 차지하는 아이스크림을, 넘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비벼서 야금야금 먹었다. 그간 빙수를 먹을 때 섞지 않고 떠먹는 스타일을 고수하였지만, 오늘 나온 건 내용이 부실하고 아이스크림이 단단해서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차가운 공기와 차가운 빙수가 안팎으로 냉기를 날랐다. 잠시 오들오들 떨면서 추위를 즐겼다.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시절의 막이 막 열린 것 같았다.


잠시 거리로 나서니 얼마 전까지 넘실대던 냉기는 빗방울 자취가 사라지듯 증발하고 온기만이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무더위 속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변덕쟁이. 오늘의 일기에 대고 쫑알거리며 더위가 밀려오는 늦은 오후의 진득한 볕에 다시 섰다. 횡단보도를 지나야 했고 그늘이 큰 차양을 옆에 두고도 굳이 미간을 찌푸려 가며 이젠 무거운 검정 카디건을 여미며 신호를 기다렸다. 길고 긴 두건이 있으면 눈만 내어놓고 모두 가린 채 사막을 건너는 사람처럼 의연하고 싶단 생각을 잠시 했다. 상상 속의 그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수천 개의 별을 담은 눈동자와 깊은 아이홀, 자상한 눈꺼풀을 살짝 접으며 가만히 웃고 있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소원 중에는 사막에서 별 보기가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다만 웃었다.


월말에 가까워지면 각종 독촉 메시지가 다양한 방법으로 날아든다. 문자와 톡과 메일 셋 모두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둘 이상의 형식으로 말을 건다. 이자 내야지, 원금 갚아야지, 이자와 원금 갚아야지, 카드값 내야지.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내가 쓴 액수에 놀라고 나의 가난에 놀라고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줄어들고 있음에 가슴 졸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 그 자체이다. 나는 내 생존을 더 밀고 나갈 에너지원도 고갈됐고 방향도 잃었고 의미는 너무나 어린 시절부터 잃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메시지들이 내겐 조급함보다는 슬픔을 준다. 이렇듯 내게 곧 닥칠 괴로움은 나 자신이라는 존재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치르게 될 몫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여름의 나날이다. 무더워서 선풍기 아래로 기어들어 가야 하는 시간, 길거리 계단 어디든 앉아 맥주 한잔하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시간, 이웃의 소음과 이웃의 냄새를 어쩔 수 없이 열린 창으로 공유하는 시간, 데운 물이 아니더라도 샤워가 가능한 시간, 무언가 활짝 벌려놓고 그대로 집도 문도 나도 하늘도 다 최대치로 열린 것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는 신호, 여름.



가난한 주머니를 뒤적여 맥주 한잔 들고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다가 모기에게 물려서 긁느라 피가 나도 내 가난이 비참하진 않을 것 같은 날이다. 집에서 추위에 떨며 아파야 했던 공포의 겨울은 아닌 게 어디냐며, 난방비 아껴서 다행라며 주억거리는 여름이다. 그러니 아침의 그 고즈넉한 볕과 바람의 충만감은 스스로에게 줘도 무방한 잠깐의 기쁨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적으로 거듭 실패하는 나는, 공포가 머리를 굴려 다가오더라도 조바심이 턱 밑까지 타올라서 귀와 입과 눈을 파고들더라도 터무니없을 만큼 철없이, 세상에 가장 자애롭고 평화로운 한 사람으로, 잠깐의 낭만을 안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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