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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ug 27. 2023

세월의 더께는 푸른 잎을 틔운다

뿌연 하늘 아래 빛의 양이 적어서 채도조차 낮아 보이는 오후다. 습한 기운을 몰고 있는 바람마저 적은 섬의 저기압은 발랄함과 경쾌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맥북을 열어 빈 문서를 바라보며 뭘 적어야 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머릿속까지 비어버린 상태였다. 펼쳐둔 채 한참을 있다가 SNS를 훑었다. 그러면서 아무 말이나 쓰고 아무 말이나 댓글 달고 하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런데 희안하게도 쏟아져 증발한 듯이 사리지고 낮게 내려앉는 기압만이 몸을 가로누르고 있었건만 마치, 잃어버린 기운이 되돌아 온 듯 조금씩 몸이 이완되고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가 농담 같은 잡담 때문이라니.... 희미하게 웃으며 흐린 날이면 찾아오는 통증의 시작을 새삼 떠올렸다.






교통사고는 이십 대 중반에 났다. 사중추돌 사고였는데 내가 탄 차량이 신호를 잘못 보고 계속 달리는 바람에 생긴 사고였다. 앞선 2대는 중형차였고 바로 앞의 차량은 SUV였다. 내가 탄 경차는 완벽하게 찌그러졌고 그 자리에서 폐차 판정이 내렸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가슴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시속 80km가 넘는 상태로 지하철 공사 현장을 회전하며 달렸던 터라 빨간 불을 인지하지 못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한번 밟지 못하고 들이박았다. 당장 눈만 돌리면 보이는데도 경찰은 내게 안절밸트 안 맺었죠?라는 멍청한 질문을 할 정도의 끔찍한 현장이었다. 숨이 멈췄었고 심장이 멈췄었고 의식이 오갔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우연히 같은 병실을 사용하게 된 할머니 환자분이 그 현장을 그 자리에서 봤다고 했다. 보조석 사람은 죽었을 거라고 당시 사고를 지켜본 사람들이 말했다고 한다.


엄청난 크기와 색의 멍을 여기저기 달고 있었지만, 찢긴 외상은 하나도 없는 기적적인 상태에서 절대 안정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꼼짝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뇌가 심하게 흔들렸고 가슴을 따라 가느다란 금이 갔고 무릎 관절이 나갔고 손가락 관절도 나빠졌다. 훗날 물리치료를 하던 치료사는 내게 피아노도 타이핑도 하지 말라고 했다. 중년 이상의 관절 상태로 나빠졌으니 더 닳기 전에 아끼라고 했다. 기억력이 나빠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 두려운 것은 과거의 기억이 나의 상상이나 꿈과 뒤섞여 정확해진 게 없어졌다는 거다. 나의 과거는 내가 정확하게 알기 어렵게 희미하게 잔상처럼 남아버렸다. 웬만한 건 보고 나면 구석구석 완전히 기억하는 기억력 때문에 괴롭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돼 버렸다. 누군가 네 기억이 틀렸어! 하면 그때부터 주춤거렸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모조리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후 생긴 습관이었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었고 믿을 수 없는 나는 자꾸만 주눅 들어갔다.


시간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회복도 가져왔다. 기억력은 차츰 처음과 비슷하지는 않지만 나아지기 시작했고 과거는 그저 과거로 묻어두며 얽힌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자꾸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친구에게 단호하게 반박하고선 가슴 졸이며 확인해 보고 내 기억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론 그 친구가 소위 나의 기억을 갖고 노는 일은 없어졌다. 무너졌던 자존감을 쌓아가며 다소간의 겸손도 배웠다. 당당하다 못해 자만하던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러운 정도의 내공은 자리 잡았다. 이제 나는 내가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정확한 게 뭔지 찾아보자고 말하게 됐다. 그 결과가 내 말이 옳다 하더라도 그게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약해졌던 관절도 차츰 나아졌다. 비가 내리기 전부터 가슴과 손가락 무릎 등 관절 마디마디마다 통증이 시작돼 정확하게 일기예보를 맞히던 시절의 자괴감은, 느리지만 천천히 회복했다. 퇴행성관절염이나 류머티즘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강도 높던 통증이 약해지고 희미해졌다. 이제는 좀 많이 부으면서 어깨가 무겁다는 정도로 정리되었다. 지난해 발목인대파열이 있었음에도 잦은 통증과 별개로 몸 상태가 평온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바르게 걷기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안에 가장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바른 자세로 걷기였다. 그게 축적되니 클러치 등을 사용하느라 비틀어졌던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고생은 했지만 후유증은 거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한참씩 멈추기도 했지만, 꾸준히 이어온 요가와 근력운동의 도움도 컸으리라.






그림자도 없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면 당장 비가 쏟아져도 이상한 것 없는데도 시멘트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회색빛은 변함이 없다. 낡아가고 늘어지고 주름지고 늙어가는 게 나이가 드는 방향만은 아닐 터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젊은 시절보다 더 건강해진 부분도 있고 잃어버린 아름다움도 분명히 있다. 늙음이 추함이 아니듯 늙음이 퇴락함은 아니다.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진 그대로 싱싱한 푸릇한 잎새를 틔우는 고목처럼 생은 언제나 그 안에 싱그러움을 담아낸다. 잎을 틔우지 못하는 나무는 죽은 나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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