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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ug 30. 2023

경계의 창, 벌레하고 나

글쓰기와 자료수집 등 여러 작업을 위해 카페에 가면 주로 앉는 자리가 있다. 가장 뒤쪽 구석 자리들이 인기가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손때를 많이 타서 굳이 선호하지 않는다. 비어 있을 때조차 거기에 자리 잡지 않는다. 그곳의 바로 앞자리, 발코니와 반쯤 연결되는 자리가 몇 달간 거의 지정석이 돼 버렸다. 벽에 콘센트도 있어서 급하게 충전해야 할 때를 대비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바깥 풍경이 보인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학창 시절 때도 낸 창가 맨 끝 바로 앞자리를 선호했다. 주니가 나서 수업을 귓등으로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면 먼지 가득한 운동장을 달리는 친구들이 보여 가끔 선생님 몰래 손 흔들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도 창가 자리를 잡게 되면 그렇게 좋았다. 햇살이 좋은 날은 특히나 느릿한 교수의 강의를 배경 삼아 창밖으로 바라보곤 했다.


창가이지만 길게 이어진 선의 중심에서 벗어날 것, 구석이지만 움직임의 반경이 편리를 놓치지도 말 것. 며칠 카페 이 자리 저 자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선택한 자리가 지금 앉은 곳이다. 지금까지 다행히도, 어떤 시간에 오더라도 이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운이 고마웠다. 시선이 트인 반경이 아마도 가장 넓을 이 자리, 바깥과 안과 복도까지 모조리 시선에 담을 수 있는 이 자리. 벽에 붙은 스피커가 가까워 듣고 싶지 않아 소음 같은 노래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 가뿐히 차단해 주었다. 공기를 흡수해 진공으로 만드는 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이어폰을 착용하는 순간 소리는 흡수 후 분리수거장에 버려졌다. 선택한 자리, 선택한 음악, 선택한 음료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은 축복이 되었다. 오늘처럼 뭘 써야 하나 들썽하며 빈 공간을 바라보던 시간에도 내게는, 이 축복의 시간이 사랑스러웠다.





오늘도 자리에 앉아 작업 준비를 하는데 평소보다 작은 생명체들이 눈앞을 어지럽히는데 숫자가 과한 듯했다. 손을 휘저어 보지만 개의치 않고 주변을 동글동글 돌아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며 잠시 웃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발코니 폴딩도어를 보니 수십 마리의 날벌레들과 파리와 모기가 유리에 붙어 헤매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초음파로 벌레를 퇴치한다는 앱을 깔았다. 최대치로 소리를 올려보았지만, 벌레들은 여전히 창에 붙어 잘 기어다닌다. 잠시 고민하다가 크고 긴 유리문을 밀어서 틈을 만들었다. 기역으로 꺾이며 열리는 문의 위아래로 틈이 생겼다. 개인 공간이 아니기에 전체를 열 수는 없어서 앉은 자리 옆을 조금만 움직였다. 투평한 안과 밖의 경계에서 왜 날아갈 수 없는지 어리둥절해 그 자리를 돌고 도는 저 벌레들이, 어쩌다 보면, 내 핸드폰에서 나는 초음파 소리가 싫어서라도, 마침내 보이기만 하고 닿지 않던 넓고 시원한 바깥으로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다시 잠시 바깥을 바라본다. 무수한 차와 바이크가 오가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어딘가는 햇살로 눈 부시고 어딘가는 짙은 그늘 속에 잠겨 있다. 보기 흉한 플래카드도 걸려 있고 건물들 사이로 하늘은 전형적인 하늘색으로 물들어 있다. 가로수는 할 말을 잃은 현자처럼 우두커니 서서 무심히 세월을 흘려보낸다. 낮은 화단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은 매연 가득한 사거리에서도 선명한 빛으로 꽃답다. 어딘가 숨어들듯 움직이고 있을 길고양이를 생각한다. 근린공원 한가운데를 맹렬하게 무리 지어 날아다닐 날벌레들을 생각한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다시 유리를 바라본다. 날벌레들이 줄었는가? 글쎄 기분 탓일까? 아니, 분명 숫자가 줄었다. 열 마리도 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위아래로 흩어져 있고 그 숫자도 줄었다. 카페 내 몇 시간을 보아도 뭉쳐져 있던 수십 마리기가, 공간 내 다른 곳으로 흩어졌을 수도 있지만, 부디 바깥으로 날아갔기를 바란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며칠이 평생일 벌레에게 답답하고 좁은 카페 안에서, 보이는 바깥을 두고 헤매기만 하는 게 안돼 보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내 편리 외에는 무심한 편이라 벌레를 마주하고 처음든 생각은 전기벌레퇴치기를 갖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귀찮은 게 많은 성격에 앞서 언급한 과정은 시간 낭비로 자동분류된다. 카페에 벌레퇴치 약을 뿌릴 수 없으니, 이 창가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생각했다. 죽은 벌레가 후드득 떨어지면 모아서 버리면 그만일 거로 생각했다. 구매를 위해 가게를 들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무심코 무자비해지는 무신경한 성격은 다정과 거리가 멀어서 스스로 걱정되곤 하는 게 바로 이런 면이다. 관찰하고 바라보고 그러면서도 벌레 때문에 덜 괴로울 방법을 고민하게 된 시간적 여유가 강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 작은 사건. 이제 거의 모든 벌레가 사라졌다. 다르게 생각하고 자세히 바라보면 공존하면서도 쾌적할 수 있다. 조금만 부지런해져 주변을 관찰하여 살필 것,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면 관찰력과 상상력을 키울 것. 오늘 카페 창가 자리가 준 선물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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