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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Sep 24. 2023

우연

베란다 천장에서 똑똑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진 곳은 평평해서 물방울이 모이지 않고 흩어지며 넓게 퍼져나갔다. 물이 만들어 낸 얇은 막은 거울처럼 내게선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형상이 비쳤다. 톡. 한 방울이 부서지며 조각난다. 형체가 흔들린다. 그 안의 세상은 내게 보이지 않는 곳을 보여주고 있어서 언뜻 이곳이 아닌 듯 보인다. 사거리는 사람들이 오가고 가로수는 흔들리고 전깃줄은 가끔 휘청이고 건물 사이 하늘은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놓은 창처럼 푸르다. 그 모습 어디에서 물 바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앉아 바라보는 이곳은 폴딩도어라서 저곳처럼 핑크색 벽과 길쭉한 창이 있지 않다.


조금 두리번거린 것 같다. 어딜까, 저곳은 저 핑크로 퍼져나가는 빛이 있는 곳은. 그러다 잊고 달리는 자동차들을 구경하고 화단의 꽃을 바라보고 표지판들이나 간판 같은 것을 구경했다. 내가 과학자였다면 정확한 각을 찾아내어 금세 위치를 알아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관찰력이 있다면 발견해 냈겠지만 조금 고집스럽게 상관없어 보이는 곳부터 찬찬히 바라보며 바라보다 한참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공부하는 사람들,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소파에 기댄 사람들도 구경했다. 바닥에 떨어진 빨래 봉지들, 과자 부스러기들, 이리저리 뒤틀어져 놓인 의자들, 구석에 자리한 공기청정기와 벌레퇴치기 같은 것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웃으며 정답!을 외쳤다. 찾지 못할 수가 없는 위치의 건물, 옅은 핑크빛의 벽을 가진 아파트가 물의 세상에 비쳤다. 다만 빛을 받아 옅은 핑크빛이 검은 바닥의 물빛엔 짙은 빛으로 선명해져 있었을 뿐. 굳건하고, 건조하게 선 아파트 외벽을 보다가 고개를 떨궈 바닥 물의 벽과 창을 보면, 역시나 여전히 낯설다. 저런 이지러짐도, 저런 선명함도, 저런 매끈함도, 저런 광택도 원래의 아파트에는 전혀 없다. 모래알이 부서져 나올 듯 건조하고 베이지색과 구별도 거의 되지 않게 옅은 핑크빛과 직선으로 짜 맞춘 창문들로 질서 잡힌 저 풍경은 같은 세상의 형상이 아니다.


생각을 멈추고 길을 바라본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본다. 커피를 잔뜩 마신다. 새로운 사람이 커피를 쟁반에 받쳐 들고 테이블을 기웃거린다. 이윽고 자신이 무엇을 하든, 적당할 장소를 찾아서 움직인다. 내가 카페에 들어섰을 때처럼, 사람들은 남아 있는 좌석 중 자신의 목적에 유리한 자리를 찾아가서 자리 잡는다. 많이 고민하고 서성이는 사람들일수록 오래 앉아서 무엇이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자료 조사를 하고 가끔 영상이라도 보려면 콘센트가 자리한 곳이 필수다. 그리고 조금은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둔, 웬만하면 폴딩도어 근처 자리. 내게 명석이 다른 이에게도 명석일 수는 없을 터이고 그런데도 가끔 이러한 해석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어, 먼저 그 자리를 선점했을 때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플랜 B, C마저 선점됐을 경우는 하는 수 없이 기웃거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오후다.


천정에선 더 이상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은 여전히 물기로 인해 광택 나고 거기 비친 건물 벽도 짙은 핑크로 건재하지만, 저 세상은 점점 좁아질 터이고 곧 닫힌다. 그때까지 차츰차츰 소멸하는 굴절 상이 이미 눈 속으로 밀려 들어왔기에, 아무 소용이 없는 바닷가 조개 조각들을 주워 담던 기억처럼, 한동안 기억 여기저기를 대굴대굴 굴러다니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잊힐 것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소멸 예정의 한 세상이 저곳에 윤기 나는 미감으로, 있다.






다시 잠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셔틀 재생을 해놓은 터라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현재 내 감정, 감성과 무감하게 강제적으로 청취한다. 물론 내가 설정해 놓은 수백 곡의 곡이라 하더라도 정렬하지 않고 분류하지 않은 전체의 재생은 취향의 선별이라는 단순 작업 외엔 전체가 혼돈이기 때문이다. 가끔 이렇듯 우연을 필연적으로 가정하며 음악을 들을 때면 시간 공간의 한정성을 넘어서서 장난을 쳐버리는 듯한 기쁨이 슬며시 피어오른다.


우연히 바라본 풍경들 속 세상과 그 속의 또 다른 세상들의 우연들, 수백 곡의 음악이 순서를 알 수 없는 재생의 우연들이, 주머니 속 사탕이 뒤섞여 손바닥에 꺼내어 놓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궁금하고 호기심 넘치는 시간으로 부풀어 오른다. 물론 이 우연은, 내 통제 속에 기능 가능하여야 한다. 그럼 우연이 아니지 않으냐고? 글쎄, 그건 통계로 본 세상이 우연으로 퉁 친 세상보다 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고 그게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라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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