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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Oct 11. 2023

경제성과 쾌락주의자

대학 시절 ‘언어의 경제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 환희를 잊을 수 없다. 경제라는 게 자본과 관련된 시시콜콜하고 중요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개념이라 생각했던 터라 그 단어를 어학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에 조금 충격을 받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내게 ‘경제성’이라는 단어는 삶을 가다듬는 기본이 되었다.


이를테면 공부할 때도 방법의 경제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공부할 장소부터 그 장소의 형식까지 작은 틈도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방식으로 구성하기 좋아했다. 이건 침실도 마찬가지여서 침대 주변을 꾸미거나 정리할 때 항상 경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구조화했다. 불편하지 않고 행동의 군더더기가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은 짜릿한 기쁨이 되었다.


이런 점은 일과에도 적용되었다. 기본적으로 머리를 굴려 하루를 시뮬레이션한다. 거기에 쓸데없거나 반복될 부분, 동선의 움직임 등을 단순화시킨다. 가끔 이렇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치고 들어오는 사건으로 인해 꼬일 때가 있고 그렇게 되면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요즘은 매우 헐렁하게 큰 틀을 짜둔다. 실행에 옮길 때 그 직전에서야 다시 세부 계획을 짜고 치밀하게 정리한다. 다시 말하지만,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무의미한 반복은 갑작스러운 충돌만큼이나 성가시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대강의 계획만 짜두고 각 운동을 실행해 본다. 예를 들어 스쾃을 몇 번 했을 때의 효과와 다른 하체 운동의 효과를 단위 시간당 비교한다. 비교 후 짧은 시간에 여러 부위에 걸쳐 우수한 효과를 보이는 것을 채택해서 집중해서 관리한다. 상체, 하체 등의 운동 몇 가지를 정하고 동선에 맞춰 마무리 운동까지 설계된 대로 움직인다. 타인이 껴들어서 그 운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플랜 B도 가동해 둔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다.


다시, 대부분 행위에서 경제성을 따지는 이유는 단지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내에 흡입하듯 업무든 운동이든 몰입하여 작동한 후 갖게 되는 휴식의 맛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 달콤하고 편안한 여유, 천천히 작업을 훑어보며 문제점을 찾아보는 시간이 나른히 흐르고 신경이 느슨해질 때의 감미로움. 그리고 마침내 갖는 완벽한 휴식을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공간이든 업무든 계획적으로 일상을 짜두고 융통성이 필요한 상황에는 그에 맞게 자잘하게 수정계획을 속도감이 느껴지도록 빠르게 처리할 때의 기쁨, 몰입의 황홀감 등 뒤에 오는 안락한 휴식은 너무나 유혹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꽉 짜인 업무를 단기간에 끝내고 남는 시간에 뭘 하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체로 뜨악해하는데 무엇이든 불필요한 움직임과 늘어지는 업무 등이 주는 귀찮음과 피로도가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 못 해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강도 높은 몰입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쾌락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하여 나는 스스로 쾌락주의자라 생각한다. 일상의 경제성을 따지는 것도, 경제성을 띠었기에 강력한 몰입이 필요한 순간을 갖는 것도, 이후 나른한 여유를 누리는 것도 모두 다 내겐 쾌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별것에 다 쾌락을 느낀다고 한 소리 들을 법도 해서 알려둔다. 자신이 변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귀띔해 두자면, 요즘 MBTI가 유행인데 나는 극단의 INTJ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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