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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마 Oct 27. 2020

잡식성 인간의 취향: 10월부터 캐럴 듣기

다들 2020년 빨리 갔으면 좋겠잖아요, 그쵸?

뜨겁고 습한 여름이 지나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질 때쯤이면

‘한 것도 없는데 또 한 해가 다 가버렸네?’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연초에 써 내려갔던 화려한 버킷리스트를 떠올리며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게 끔찍하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온 세상이 코로나에 시달리게 된 2020년은 모든 사람들이 빨리 한 해가 지나가버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이 바이러스가 내년에도 잠잠해지지 않을 거라고들 하지만, 왠지 한 해가 끝나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것만 같은 그런 착각이 들기 때문일까.


2020년, 개인이든 사회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버렸다. 아니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세상이 바뀌어도 버킷리스트를 해낼까 말까인데, 그중 몇몇은 아예 꿈꾸기 조차 어려워져 버리다니. 해외여행을 가리라는 휴가 계획부터 이직, 구직과 같은 개인의 중대사, 또는 사업 계획 등 모두가 바이러스와 불편한 공생을 하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난 2020년이 얼른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캐럴송을 듣기 시작했다.

애플의 플레이리스트는 언제나 훌륭하다.

11월이나 되어야 거리나 카페에서 간간히 들어왔던 캐럴송을 일찌감치 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캐럴을 들으며 올해가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일종의 의식 행위였다. 시기도 시기지만, 사랑이 넘치고 따뜻하고 자비로운 내용의 가사는 그동안 얼어있던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도 얼마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올해 내 주변에도 유독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서 그들과 얘기할 때면

‘올해가 빨리 지났으면 해서 저 요새 캐럴 듣잖아요. 한 번 들어보세요. 진짜 마음 가다듬는데 도움이 된다니까요!’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던지곤 했다. 서로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빨리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진심이 전해지길 바랐다.


올해는 그 어떤 때보다 차가운 공기가 유난히 무겁다. 얼굴을 반쯤 가리는 마스크도 어쩐지 무표정, 무감각을 표상하는 것만 같다.

11월, 12월이 지나 2020년이 마무리되고, 다가올 2021년엔 우리 너무 행복해서 한 해의 끝을 붙잡고 캐럴은 최대한 미루고 싶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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