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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마 Jul 15. 2018

글, 그리고 내 삶의 자취

글이 내게 갖는 의미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아침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찍이 숙소를 나섰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길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로 향한다.


마침내 도착한 카페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에 커피만 마시겠다는 다짐이 우습게도 무너진다. 카페 주인 아저씨에게 추천 받은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세 자리 밖에 없는 좌석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본 조르노” 이탈리아 특유의 매력적인 억양으로 오가는 노랫말같은 아침 인사를 들으며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한다. 새콤달콤한 레몬잼을 머금은 크로와상은 기대보다도 훨씬 맛있다. 겉면은 얇지만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버터향이 가득하다. 엄마랑 함께 했다면 엄마도 분명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영화같은 배경 속에서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본다. 


...


여기까지가 베네치아의 카페에서 썼다 지웠다를 수 차례 반복하다가 미완성 상태로 나의 핸드폰 메모장에 남겨진 글이다. 비록 완성되지 못하고 남은 글이지만, 확실히 사진만 남기는 것보다도 훨씬 오래도록 그 때의 정취가 남는다. 사진은 당시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데 도움을 주긴 해도 그 순간의 느낌까지 불러내기엔 어쩐지 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글쓰기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은 실로 놀랍다. 이전에는 글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마 어렸을 적부터 의무감에 억지로 글 짓기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에게 검사 받기 위해 하루에 한 달치를 몰아 적었던 일기, 빨간 줄의 원고지에 써 내려가던 글들, 그리고 입시를 위한 논술까지, 나에게 글쓰기란 늘 숙제만 같던 행위였다.


글쓰기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여겼던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이다. 철이 덜 들었던지 사춘기가 늦게 왔던지, 20대에 들어서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내게 일기는 일종의 정신적 해우소 같은 역할을 했다. 20대 초반에는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감정을 쏟아내었었고, 20대 중반엔 외국에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혼란스러운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글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여하튼 그렇다고 내가 일필휘지로 척척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서두의 여행 감상과 같은 나의 경험이나 일기와 같은 삶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는 소소한 글들을 갖게 되어 좋다. 지금의 글은 내 삶의 작은 조각들 일뿐이지만, 이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면 언젠가는 한 편의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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