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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Feb 03. 2024

명절이야기

나떼는 그랬단다!

'고초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하더라'

옛날옛날 할머니들 신세타령 같은 넋두리다.


명절이 다가오면 신나고 들떴던 어린 시절 기억이 어느새 우울하고 속상했던 나이 든 명절로 바뀐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시집살이 매운맛의 독한 기억 때문인가 싶다.


아들 셋을 둔 시어머니는 세명의 며느리들과 함께 한집에 살싶어 했다.  아들내외와 함께 살던 시어머니는 둘째 며느리인 나와 셋째 며느리를 당신이 사는 큰집으로 출근하게 했다.


막강한 권력의 표본이었다. 기막히고 어이없는 월권이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거역 못한 치외법권의 존재였다. 세 아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한 어른이 었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도 같다.


세 며느리가 그것도 나이 비슷한 여자들이 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는 상황이 어떻겠는가. 무슨 꽃그림도 아니고 거기에 서슬 퍼런 젊은 어머니까지 합세했으니. 나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경험 못한 인간군상들의 미묘한 심리체험 세월이었다.


시어머니 기준으로는 세상에 없는 잘난 아들 셋이나 두었다는 그 자부심으로 유아독존 안하무인이던 시어머니.

호랑이 시어머니 뒤에서 토끼인척 여우과에 속했던 큰 동서.

나와는 여고 동기로 이 세상 최고의 요조숙녀인양 내숭 떨며 큰동서와 시어머니사이에서 잔머리를 굴렸던 연애박사 작은동서.

하는 일마다 최고의 칭찬만 기대하며 세상물정은 부모가 전부로 아무것도 몰랐던 .


명절이면 찾아오는 극한경험은 인내심 없는 내게 하늘이 주신 시험에 드는 시간이었다.


여관과 목욕탕을 운영했던 시집은 명절  날이 되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두대의 전화기에 시어머니는 목청을 높이며 직원들에게  일들을 명령했다.


"김기사 보일러실 확인하고 점검 똑바로 해!"

"이기사 제대로 자리 지키라고 했지?"

"프런트 잔돈이랑 전표 안 모자라는지 확인했어?"

"뜨건 물이 왜 안 나와? 그럼 ㅇㅇ로 손님 실어 날라야지 뭣들하고 있는 거야!!"


어느 해 명절 전날 들이닥친 손님들로 목욕탕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감당 못한 보일러가 멈춰버렸다. 온수가 안 나오자 욕탕 안은 사람들의 불만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사태를 보고받던 시어머니는 각자 일을 하고 있던 며느리들과 막내아들을 소집시켰다.


" 목욕탕 손님들을 두 곳으로 분산시켜야 하니 빨리 준비해. 각자 차를 가지고 ㅇㅇ로 가자"


누구랄 것도 없이 대장의 명령에 따르는 군인들처럼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우르르 나가버렸다.

집 지키는 보초역할과 집안일이 내 몫으로 떨어지며 잔류가 결정된 나였다. 부엌을 보니 한가득 설거지와 명절준비 재료들과 식사준비음식들이 기함할 정도였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집을 와서 이 고생인가 싶은 생각은 결혼 뒤 수도 없이 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미 기차는 떠난 뒤였는데. 


어쨌든 그날의 나는 전설 속 팥쥐였고 동화 속 신데렐라였다. 걔네들은 해피엔딩의 주인공이라도 되었건만 내겐 절대 없을 'to be continued'  바로 그것이었다.


이일 저일 해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전쟁터로 나갔던 가족들이 돌아왔다. 죽을 둥 살 둥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고 저녁식사를 함께 먹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표 나지 않게 그 많은 집안일을 했던 나는 그저 쉬고 있던 좋은 며느리가 되어있었다. 고생했다는 목욕탕 자원봉사자 두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격려를 뒤로 세 며느리는 남은 명절준비 음식을 마무리했다. 빠질듯한 어깨와 아픈 허리를 두드리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시집을 나섰다.

이때 등뒤로 들리는 시어머니의 서슬 퍼런 명령이 귓전을 때렸다.


"제사 지내야 하니 내일 아침 일찍들 라"


시어머니의 끝없는 명령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제사 끝나고 가게 될 친정부모님을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다음날인 명절 이른 아침, 들어선 시집 마당엔 김장 때나 사용하는 큼지막한 함지박에 수북이 담가놓은 하얀 쌀이 있었다.

뒤이어 '며느리 괴롭힘 전문' 시어머니한마디가 들려왔다.


" 명절인데 떡을 안 하면 서운하지. 쌀 불려놨으니 제사 지내고 방앗간 다녀온 다음에 송편들 만들어라"


시어머니 등뒤로 보이는 입이 댓 발 나온 큰동서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설이 아닌 실화인 나의 <나떼는 말야>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미래의 며느리는 믿으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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