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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Feb 25. 2024

괌에서 만난 [달과 6펜스]

삶의 교차로에서

혼자 떠나는 여행의 주인공은 언제나 멋진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거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영화 속 그 여행이 바다 건너 낯선 나라라더욱 예상 못한 인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독서모임에서 정한 소설 [달과 6펜스]다시 읽으며 20여 년 전 그때의 찰나 같았던 시간이 떠올랐


여름휴가를 위해 정한 곳은 괌이라는 나라였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가족 여행지였다.

4시간 남짓한 비행 후 출입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기는 두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남편은 출입국 심사를 앞두고 영어울렁증으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 순서가 되어 괌 출입국직원에게 여권을 주며 "Hello"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내 얼굴을 한 번 바라보던 직원은 여행목적을 물었고 나는 가족들과 여름휴가 여행을 왔다고 답했다.  직업을 묻는 그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소개하듯 영어교육과 영문학을 전공한 교사라고 대답다.


끝날 거라 생각했던 그의 질문은 느닷없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소설 달과 6펜스를 읽어봤나요?"


갑작스러운 이었지만 나는 기다렸다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물론 읽었어, 작가인 서머셋 모옴은 대단한 소설가죠"


그는 다시 [달과 6펜스] 영화를 냐고 물었고 나는 남자주인공인 '조지 샌더스'의 매력적인 모습과 인상적인 연기를 말했다. 나를 바라보던 그가 '조지샌더스' 배우의 연기는 최고였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마치 영화 속에 살아있는 듯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오랜 친구를 대하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8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달과 6펜스] 1942년 고전 작품이다. 이 오래된 영화를 괌에서 만난 출입국 직원과 입국심사대에서 대화하는 내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무표정한 모습과 냉소적 캐릭터 그리고 화가인 고갱의 이야기까지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나와 의 시간이 멈춘듯한 그 길었던 공감이 우리의 기막힌 인연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서로대화가 문학과 예술로 이어지며 인간을 향한 호기심이 진지함으로 넘어가는 찰나였을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기다리던 남편이 다가왔고 이름과 국적 그리고 직업을 확인하며 우리의 입국심사가 마무리되었다.


무슨 얘기를 끝도 없이 하냐는 남편의 잔소리를 뒤로 그와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누지 못한 주인공의 달을 향한 열정과 현실의 6펜스가 아쉬움으로 남아 20년 전의 나를 다시 불러낸다.


''로 상징되는 화가로서의 이상적 삶을 주인공은 광적으로 집착한다.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채 죽어가던 주인공은 일생일대의 걸작 남긴다. 오두막집 벽면전체에 그린 인간의 능적 모습을 장엄한 자연과 함께 원초적 신비의 아름다움으로 재현한 것이다. 소설에 묘사된 스트릭랜드의 벽화는 나의 상상이 더해지며 심장을 압도하는 그림으로 각인되었다.


원주민 아내 아타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불태우는 벽화와 불에 타는 오두막집의 영화 마지막 장면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달의 몰락처럼 주인공의 삶을 소유했던 열망이란 정체가 온전한 그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오버랩되는 비장한 음악이 무성영화의 배경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그때 스트릭랜드가 추구했던 달을 향한 삶의 열망을 깨달았던 것일까,  6펜스가 주게 될 세상의 행복인 찰나의 순간을 놓지 못했던 것일까.


냉소적인 표정의 배우 조지 샌더스는 지금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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