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온 나라가 주춤하며 걱정이 쏟아지던 날 내가 사는 이곳은 흐리다가 비가 오는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시간이 맞은 선배와 정읍으로 마실여행에 나섰다.
차 안의 우리들을 바라보는 흐릿한 하늘이 첫눈은 아닐 듯 기온은 적당히 추워 다행이라 생각했다. 서울의 눈 얘기와 이런저런 수다로 우리는정읍의 유럽마을을목적지로 정했다. 우연히 알게 된 그곳의 아기자기한 모습에 냉큼 '이곳이다'생각하며 정한 곳이었다.
유럽의 감성을 지닌 독일인마을의 남해를 여러 번 다녀온 나는 내심 정읍의 그곳에 이런저런기대를 하며열심히 운전에집중했다. 가는 동안 흐림에서 비로 다시 흐림으로 바뀌는 변덕스러운 11월의 날씨는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드디어 정읍의 이정표가 보이자 날씨는 급 화창한 하늘로 바뀌며 대한민국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님을 실감케 했다.
수다로 꺼진 배를 느끼며 우리는 젓갈이 들어간 독특한 갈비요리로 맛난 점심을 먹었다. 달큰한 국물에 감칠맛이 일품인 젓갈갈비짜글이 같은 메뉴선택은 성공이었다.
몸과 마음이 든든해진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 유럽마을로 향했다. 다시 내리는 가는 비에 파란 하늘이 11월의 가을을 겨울로 바꾸는 듯했다. 드디어 도착한 눈앞의 유럽마을은 엥겔베르그란 이름의 여러 개의 건물이 모인 마을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속의 건물들은 이국적이면서 독특한 디자인이 멋지고 특이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유럽감성의 건물들을 사진 속에 가득 담은 우리는 명장이 운영한다는 베이커리에 자리했다. 널찍한 카페는 알듯 모를듯한 분위기로 조용한 곳이었다. 손님이 우리뿐이어서인지 친절한 설명과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의 맛있는 디저트를 맛보며 대접받는기분에마음이따뜻해졌다.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담으며 선배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장사에 들러볼까"
당연히 나는 대찬성이었다. 내가 사는 곳과 불과 1시간 거리의 내장사를 지척에 두고도 그곳의 가을 단풍은 늘 TV화면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남들 다하는 내장사 단풍구경을 여태 한번 못 했다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당장 가자"는 선배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30여분 거리에 있는 내장사까지 운전하는 동안 날씨는 흐림에서 화창으로 숨바꼭질하듯 바뀌며
저무는 늦가을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였다.
내장사에 가까워지자 도로 양 옆에 서있는 단풍의 향연이 환상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있는가로수 단풍은 내장사 단풍을 평생 처음 보는 새내기 방문객을 위한 배려 같아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와!! 우와!! 이야~~"
그저 탄성만 나오는 내가 우스운 듯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는 선배 또한 차창 밖 단풍에 탄성을 반복했다.
내장사의 단풍은 지난가을 늦더위에 다 늦게 색을 바꾸며 찐한 형형색색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날 내리는 11월 가을비에 운치를 더하며 명화 속 장면인 듯 눈호강에 마음까지 울렁였다.그림이 표현 못할 붉은색과 노란색에 주황과 주홍이 어우러지며 파란 하늘과 잿빛이 교차하는 배경 속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그림 같은 자연과 나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내리는 빗속의 겨울여인이 되어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맑아진 날씨가 오늘 하루 선물처럼 내게 오며 11월최고의주말을만들었다.
'부자란소유가 아닌 만족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며다가오는 12월의하루도 부자가 될 준비로김칫국을 마셔볼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