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공기가 싸하게 상쾌한 주말이었다. 늦은 오후쯤에 단짝친구와 집 앞 호수공원을 향했다. 사는 이야기부터 드라마까지 온갖 수다가 쏟아지는 우리만의 힐링타임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공원은 저녁운동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얼마쯤 걸었을 때 공원 광장 쪽에서 들리는 노랫소리가 가까워지며 우리의 귀를 자극했다. 여느 주말처럼 한두 명의 길거리 라이브려니 생각했는데 늘 들리던 버스킹과는 달랐다. 가을저녁을 가로지르는 목소리는 넓은 공원을 채우며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와! 노래 진짜 잘한다~~"
"그러게, 일반인은 아닌 것 같은데"
친구와 나는 노래에 집중하며 음악소리가 들리는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는 기타와 드럼 신세사이저등의 악기들과 함께 10여 명이 함께하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콘서트장 같은 스케일이었고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연주는 공간을 채우며 넘치는 에너지와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깊은 울림의 보컬은 멋진 기타 연주와 함께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이루었다.
친구와 나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발길을 멈춘 채 사람들 속에 자리 잡고 서서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계속되는 공연 레퍼토리 또한 다양했다. 김광석과 이문세의 노래부터 너드 커넥션, 레이디 가가의 노래까지 우리 둘의 취향을 저격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수라던 우리는 걷기는 뒷전이 된 채 노래에 빠져 박수와 환호성으로 어느새 버스킹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연 중간 리더인 멤버가 소개한 그들은 구성원 모두 직장인들로 이루어진 '즐거운 인생'이란 이름의 밴드였다.
"우와! 직장인 밴드라고!!??"
취미로 모인 직장인들의 공연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그들에게 우리 모두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친구와 나는 "와 너무 멋져요!!"를 외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의 열혈팬이 된 듯 아낌없는 환호로 반응하는 우리가 우스워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좀 이상한 거 아냐! 뭔 버스킹에 이렇게 열광하며 함성까지!"
"사람들이 가수들 팬클럽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깔깔대며 추워지는 밤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운 인생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공연이 1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어느 순간부터 11월 저녁의 추운 기온이 내 온몸을 감싸며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내게 "안 춥냐"는 친구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나는 "괜찮아"를 반복하며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연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 형광봉을 흔들던 몇몇 사람들 중 누군가의 시작으로 우리 모두는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고 흔들며 하나가 되었다. TV에서 보던 떼창도 이어졌다. 나도 또한 추위를 이기려고 두 손을 열심히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마지막 순서라는 소개 뒤로 연속 앙콜이 이어졌고 박수와 떼창이 흥겨운 음악과 함께 함성으로 계속되다 공연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살다 살다 난생처음 경험한 손전등 환호에 떼창이 이렇게 신날줄 몰랐다"는 내 말에 친구가 킥킥댔다.
1시간이 훌쩍 넘는 공연에 춥고 허리가 뻐근했지만 공연의 감동과 여운이 가시지 않는 시간이었다.
사달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버스킹 중간부터 뻐근했던 허리가 움직이기 힘들게 아팠다. 병원을 찾은 내게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심한 일을 하셨나 봐요!"
"아닌데요ᆢ 그냥 서서 ᆢ"
"혹시 추운 곳에서 일하셨어요? 그럼 근육들이 경직되어 허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곳에 서있었다고 허리가 이렇게까지 아프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리. 그저 입 다물고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음악이 전하는 위로에 마음이 치유되는 즐거운 순간 부실한 몸을 확인한 가을밤의 호사다마.
방심은 금물인 나이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