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에 명당이 있다.
옷방과 거실 사이 통로가 바로 그곳이다.
집안의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구천동계곡은 아니어도 어느 시골 우거진 느티나무 아래 평상 같은 시원함이 최고인 자리다. 10년 넘게 사는 이 아파트에서 에어컨을 켜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지금도 그곳에 큼지막한 쿠션 기대고 옷방 베란다 통창너머보이는 7월의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본다. 사방에서 부는 바람이 뜨거운 여름을 즐기게 하니 휴가가 필요 없고 피서가 따로 없다.
10년 전 이사를 결심한 이유가 사방으로 보이는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위치가 첫 이유였다. 방마다 있는 베란다 통창이 두 번째 이유였으니 자연친화 아파트란 내가 붙인 이름이 안성맞춤이었다.
강산이 변하는 10년 세월 동안 주변의 산과 공터에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풍경은 조금씩 낯설어졌다. 변화는 마치 필연처럼, 조용히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변화가 세상의 힘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면서 나는 세월 속 그때를 떠올려본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하늘,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물드는 들녘, 창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들.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남겨진 것들의 소중함은 더 선명해진다.
날마다 이어지는 최고기온이 힘겨루기 하듯 높아지는 7월에도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즐기며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오늘이 아름다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