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분노 외에도 과거의 사건으로 삶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부정적 감정으로 자부심을 들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자부심이 부정적이라니?’ 출신학교나 스포츠팀, 또는 일하고 있는 직장, 직장 내 팀 등등 모든 공동체들은 그들만의 자부심, 즉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기를 권장한다. 자부심은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특별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어 주고, 그 특별함은 각종의 행위의 동기가 된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는 각종 자부심들의 향연이다. ‘어디어디 학교는 어떤 전통을 가지고 있고, 어디어디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어떤 장점이 있다‘, ‘이런 집단에 소속되면 어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등등. 사회가 나서서 각 개인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부추기는 상황이다.
자부심 외에도 자존감, 자존심과 같은 비슷한 개념들이 많다. 자부심에 대해 더 얘기 하기 전에 이들 개념들의 차이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우선 자존감을 살펴보자. 자존감은 자신이 다른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고유 가치‘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당당하게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특히 자존감이 자존심이나 자부심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후자들이 다른 사람과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인 반면, 자존감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역량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존감은 외부 조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성향이다. 그러므로 항상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인정하려는 특징을 가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속담이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는 자기 동서보다 연봉이 1달러 높은 사람‘ 이라는 서양의 유머 등은 이런 자존심을 빗대어 꼬집는 것이다.
반면, 자부심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을 통해 성취한 성과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소속된 집단이나 소유물)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를 당당히 여기는 마음' 말한다. 외부로 드러나는 성공을 했을 때나 원하는 집단에 속했을 때-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거나 우수한 대학이나 기업에 들어 갔다거나 등 –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지속성을 갖기보다는 성취감이나 외부인들의 칭찬 등을 통해 생기는 일시적인 만족감이다.
비록,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둘 다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보니 이것이 지나치게 과열 될 때는 인간의 삶에 부정적 폐해를 주게 된다. 특히 자부심의 경우에는 ‘나와 너‘ 혹은 ‘우리와 타인들‘ 을 구분하여 ‘그들보다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자부심을 보다 자세히 분해 해보면, ‘우리 학교는 취업률에서 다른 학교보다 뛰어나, 그래서 그 점에서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돼‘, 또는 ‘우리회사는 복지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 그러니 자랑스러워 할만 하지‘라는 생각들을 구성원에게 주입한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생각이고, 또 취업률이 높거나 복지수준이 좋으면 당연히 자랑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나 ‘우월하다’는 의식은 남들과 비교를 부추긴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을 항상 타인에 두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타인과 비교하게 되면 종국에는 내가 행복한가 아닌가의 기준도 타인과의 비교로 결정을 하게 된다. 이는 마치 인생을 달리기 경기처럼 여기는 것과 같다. 달리기 경기의 본질은 빨리 뛰어야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단 0.1초라도 2등보다 먼저 들어와야 승리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경쟁자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된다. 이러한 경쟁상황이 치열해지면 달리기 경주는 어느덧 축구시합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 비록 경쟁자보다 빨리 들어와야 하지만, 자신의 레이스에서 열심히 달리기만 해도 되는 ‘일방경쟁’에서 어느덧 경쟁자의 진로와 속도를 방해하기 위해 태클을 걸고, 심지어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대결경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쟁이 더 심해지면 결국은 이기기 위해 상대를 때려 바닥에 눕혀야 하는 권투나 격투기 시합처럼 되고 만다.
내 스스로도 최근에야 느낀 것인데, 지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서 나를 움직인 힘은 다름 아닌 ‘자부심’이었다. 집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일을 하러 나서서 사람들과 부대끼면 그 때부터 나를 움직이는 것 중 가장 센 놈은 확실히 자부심이다. 처음에는 이 자부심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그리고 내가 소속된 조직과 나의 경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고객이나 경쟁자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부심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자부할만한 뭔가를 소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자부심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보이지 않던 진실이 보인다. 자부심은 항상 “내 방식이 제일 좋은 것” 이라고 말한다. 그 녀석의 주된 관심사는 성취하고, 인정받고, 남달라지고, 완벽해지는 일이다. ‘누구보다 낫다.’라고 느끼거나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다. 모든 것이 ‘남들보다 나아야 하고 또 그 사실을 남들로부터 인정 받아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해진다. 뿐만 아니라 매우 경직되기도 한다. 가령, 모임에서 예전에 주변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안면을 틀 수도 있지만 자부심이 강한 나는 그 사람이 먼저 와서 인사하기를 기다린다. 자신이 먼저 아는 척 하는 것마저도 자부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다가 오지 않으면 끝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맺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면, 니 손해지 내 손해냐? 내가 너보다 더 나은데……’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자부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은 오히려 더욱 취약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왜 자부심을 키우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내면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내면에 자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자각, 즉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럭셔리한 아파트, 환타스틱한 외제차, 어매징한 연봉과 경력 등등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에게 집중하면서 자부심을 키우려고 한다. 마치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과 같이 자부심의 경쟁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내면은 더욱 공허해 진다. 내면이 공허한 사람들은 아무리 외면이 화려해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엄청난 부와 지위, 권력 등을 가진 사회지도급 인사들 중 자부심으로 꽉 찬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나락을 길을 걷는 것을 요즘 언론을 통해 자주 본다. 벤처신화의 주인공, 잘 나가던 엘리트 검사, 재벌의 상속녀 등등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 사람들의 내면은 정작 공허했다. 그들의 내면은 빈약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외부 물질에 대해 끊임 없는 탐욕을 부렸다. 그렇게 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만리장성처럼 쌓았지만 결국은 모든 성취가 단 한 순간에 무너질 만큼 취약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때로는 자신의 조직 내에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외부에서는 매우 겸손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때의 겸손함은 자부심이 지나치다 보니 내놓고 떠벌리지는 못하는 자기 업적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인 ‘거짓된 겸양’이다. 조직의 부하 직원들은 무시하고 자기 방식을 강요하면서 고객과 같은 이해관계자들에게는 한 없이 상냥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그런 부류이다. 이런 사람도 사실은 자부심에 지배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부심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동기부여, 조직의 입장에서는 동기부여와 내부결속력 강화 등의 수단으로는 더 없이 유용한 감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본질적 속성은 남들과 끊임 없는 비교, 경쟁, 남들에 대한 비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 낸다.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에고가 팽창할 때로 팽창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려고 한다. 자부심에 가득 찬 집단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런 집단적 자부심으로 인해 우리사회에 지연, 학연 같은 것들이 부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자부심은 때로 시기와 질투, 열등감이라는 형제를 데리고 다닌다. 시기와 질투, 열등감 역시 뿌리는 자부심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남들보다 나으면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내가 못하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열등감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자부심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렇게 자부심을 놓아 버리면 그 자리에 진정한 겸손이 들어 선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굳이 방어해야 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방어 할 것이 없으면 남들의 공격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공격을 공격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남들을 공격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굳이 남에게 증명하고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하늘로부터 받은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아는 사람은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진정한 겸손으로 연결 된다. 내면이 가득 차 있으므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타인들이 인정을 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인정을 받으려고 일부러 뭔가를 행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여 옳다고 느끼는 것을 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