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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신 Oct 25. 2021

[교학상장] 진리와 자유

  인생을 통해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곧장, “돈”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그렇게 소리치는 학생들의 얼굴엔 장난기가 다분합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선생님. 돈, 필요하지 않아요?” 라 덧붙이곤 합니다. 누가 뭐라고 비난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 스스로 반성과 변명의 말을 곁들이고는 말간 눈으로 제 눈치를 살펴봅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말한 것이 바람직한 대답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돈을 주고 산 물건, 즉 재화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도구적 가치를 함축하는 것이지 돈 자체에 우러를 만한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선 급한 대로 돈의 필요성을 앞세웠을지라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운용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고 돈을 사용하여 그것을 유통하는 것입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와 같은 현실을 정리한 것으로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경구입니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망각하고 잘못된 가치관 속을 표류하곤 합니다. 돈과 물질을 중시하면서 정작 중요한 사람, 즉 자기 자신은 주변으로 몰아내고 마는 것입니다. 돈은 편리하게 이용하려고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인데, 그 필요성이 점점 커지자 거꾸로 사람이 돈을 좇는 노예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돈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요한 것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주변에 있어야 할 것이 중심에 자리 잡는 현상은 더더욱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기필코 찾아내어 지켜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면 찾아보라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필요한 것과 충분한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결국 그 무엇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앞 뒤 상황을 따져본다면 아무래도 우리는 필요한 것의 충족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배부른 돼지이기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갈망하는 특별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영원히 남을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며 거짓과 위선을 드러내고 그것을 웅변하는 것으로 당시 그리스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한 말은 지켰는데, 그 원칙을 너무도 엄격히 지켰던 나머지 반쯤은 스스로 선택한 최후를 맞았던 것입니다. 아테네 법정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의 죄목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헛된 말로) 꼬여냄'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에 아테네에는 공정하지 못한 형량이 부과되었다는 이유로 죄수가 다른 도시로 달아나면 추격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도망갈 것을 예상하고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숨을 곳과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놓고 권유하는 제자들을 뿌리쳤습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는 반쯤은 스스로 선택한 최후였다고 말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의미 있게 기억한 이들에 의해  ‘악법도 법’이니 '개정되기 전이라면 지켜져야 한다.'는 교훈적인 설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교묘한 말솜씨로만 유명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죽음도 감수하게 하는 참된 것,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요? 흔히 그것은 너무 어렵거나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알 수 없으며 알더라도 실천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걱정은 진리를 찾는 삶을 방해하는 가장 나쁜 선입견입니다. 진리는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거나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찬란한 햇살처럼 밝고 투명해서, 온 세상을 비추고도 남는 어떤 것이라고 현자들은 서술합니다. 누구든 알려고 한다면 알 수밖에 없고 , 또 원해서 하루하루 실천해간다면 누구라도 도달할 수 있는 필연성을 지닌 무엇이라고 합니다. 지상의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며, 그 빛이 비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갈 수도 없게 자명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앞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예로 들어보았지만 저에게 처음으로 진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경구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들은 후 한 참 지나서야 그 구절이 요한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성서 구절임을 알았습니다. 무심히 성서를 뒤적이다가 이 구절을 발견했을 때, 성서 속에 이런 말도 있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띠옹'하며 마음속 깊이 새겨진 구절입니다. 그로부터 진리와 자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진리를 얻으면 자유롭게 될지를 알기 위해 몰두해 온 시간이 꽤 된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참으로 진리는 자유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 자유는 강렬한 반짝임이지만 순간적인 일이어서인지 그것에 대해 지금 당장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가 되든 여러분도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자신의 삶 속에서 공감할 날이 있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간섭이나 규제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단순히 생각하고 만다면 자칫 방종이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보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는 타인과 부딪치거나 타인의 자유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생각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믿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의 빛처럼 언제나 환하게 빛나는 '보편적인 진리'와 함께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자유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와 자유의 의미는 이해하더라도 막상 그것을 살아내는 일은 또 다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나 미생물을 확인하려 돋보기나 현미경을 사용하는 것처럼 내 주변의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며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삶이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우리 일상 속에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될 것입니다. 예컨대, 상대방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에 관계없이 한결같은 관심과 관용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를 사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상대를 우습게 여겼는데 따져보니 상대방의 지위가 나 보다 낮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초라한 행색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거나,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앞에 서면 무조건 주눅이 들었는데 헤아려보니 그의 지위가 나보다 높고, 나보다 돈이 많고, 나보다 힘센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었다면 나는 아직 자유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쭈욱 펴고  당당할 수 있다면 그처럼 신나는 일은 없겠지요. 유명 브랜드의 값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친구, 최신형 퍼스널 컴퓨터로 집에서 게임을 하는 친구, 겨울 방학이면 매일매일 스키장에 갈 수 있는 친구를 보아도 질투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처럼 평화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떤 직업을 가졌고, 그가 또래 중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졌고, 그의 성적이 얼마나 높은가에 관계없이 그가 단지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그와 친구가 되고자 열망할 수 있다면 그처럼 복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자유로운 삶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마음을 햇볕처럼 밝고 투명하게 만들어 가는 일일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진리와 자유를 사는 첫 번째 단계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인격 도야의 과정에 입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기 성찰, 인격도야와 같은 노력은 누가 시켜서 하거나 눈앞에 당장의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함부로 성내거나 분노하지 않는 절제된 인격의 소유자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는 권위가 있어서 누구나 그 앞에서 복종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유를 살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도야한 훌륭한 인격으로 타인을 지배하려고 의도하거나 장기적으로 돌아올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복된 일이라 믿으며 스스로 선택하는 실천 덕목이며 내적인 수양인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진리를 실현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진리 추구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고 그 과정에서 잠시 잠깐 누리게 되는 자유로움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진리 추구의 과정에서 누리게 되는 자유로움의 느낌은 그 자체로 너무도 좋은 것이어서 외부로부터 오는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추진력은 진리와 자유에 대한 순진하고 우직한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다만 진리를 향한 첫 발걸음은 제각각 스스로 떼어놓아야 하는 만큼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한계를 뛰어넘어 진리와 자유를 사는 사람다운 삶, 스스로 깊이 있는 영혼에 도달하는 일이야말로 꼭 해 볼만한 도전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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