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신 Nov 01. 2021

[교학상장]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내가 꿈꾸는 학교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든 좋은 만남을 가지는 일은 행복감을 결정하는 큰 요소일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급우, 선후배, 선생님과 어떤 만남을 가지느냐에 따라 일상적인 행복감이 결정될 것이라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만큼 그들이 학교 구성원들과 맺게 되는 관계의 질이 곧 학교 생활의 만족도와 동시에 일상적인 행복감을 결정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자기 의지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첫 무렵인 청소년기에 맺어가는 인간관계는 흰 눈 내린 운동장에 첫 발자국을 내는 것처럼 매 번 망설임과 기대가 교차하는 특별한 설렘일 것이다.


  인생의 첫 길을 내는 때인 만큼 청소년기의 어느 일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시기는 지난해 가을 땅에 떨어진 풀과 나무의 씨앗이 한 겨울을 이겨내고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봄과도 같다.

  세상 물을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은 한 알의 씨앗에는 잎사귀와 줄기, 장차 피우게 될 꽃의 모양과 색깔, 결국에 맺게 될 열매까지도 이미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그네들은 남보다 빨리 싹을 틔우고, 남보다 먼저 햇살을 받고, 더 많이 한 여름 뜨거운 바람을 맞아야 온전히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식으로 청소년들을 다그치고는 한다. 지난해 한 겨울 땅 속에서 움츠려 봄날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때를 만나 땅 밖으로 움을 틔워 껍질을 벗어버리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새싹들을 향해서 말이다.


  사실, 씨앗은 땅 속에서 어렵사리 껍질을 찢어 틈을 내야 했고 겨우 움터서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내느라 골몰했을 것이다. 더러 길을 막는 자갈을 에돌아서고 적당한 온도를 가늠하고 나서야 연둣빛 싹을 땅 밖으로 내밀었으리라. 그리고는 끝 모르게 광활해 보이는 들판과 갑자기 쏟아지는 빛과 방향을 알 수 없는 데서 왔다가는 사라지는 바람에 정신을 잃을 지경 인지도 모를 일이다.


  씨앗이 땅 속에서 길을 내는 동안 땅 밖에 있는 누군가가 흙 속에 섞여있는 돌멩이를 골라내 주었다면 어땠을까? 너무도 뜨거운 태양열은 잠깐 가려주고, 세찬 바람은 또 잠깐 막아준다면 싹을 틔우는 일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우리 어른들이란 작자들은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와 정신없는 새싹들을 향해 지나치게 다그치는 것은 아닐까?세상 구경했으면 타고난 명운을 어서 꽃 피워 보라며 뛰어가 내달리라고... 그 것보다 조용히 옆에서 있어주는 일이, 함께 숨 고르기 하며 가만히 지켜주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매일 땅을 들여다보며 바람을 가늠하다가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을 골라 밭을 갈고 고랑을 치고 자갈을 골라내 던지며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는 이는 농부일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는 바로 농부와 같은 일을 한다. 봄 들판에서 새싹을 들여다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작은 연둣빛 싹이 올라오는 걸 바라보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미처 벗어버리지 못한 씨껍질을 덮어쓰고 있는 연초록 새싹을 보며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내 본 적 있는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씨껍질을 벗겨주는 그 조심스러운 손놀림 속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담았는지를 말이다. 내가 꿈꾸는 학교는 싹을 틔우는 청소년들이 마주치는 모든 첫 경험들의 좌충우돌과 결실을 미리 예감하는 교사의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다. 농부가 작물을 돌보아서 꽃 피고 열매 맺는 하루하루의 과정에 기뻐하며 애착하듯 청소년들이 제 몫의 삶을 꾸려내는 과정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곳, 교사에게도 매일매일 자라나는 배움이 있는 곳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 고전이며 중요한 철학서 중에 하나인 「예기(禮記)」편에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스승은 학생을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을 통해 커간다는 의미이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교학상장敎學相長)고 하는 것이다."


  인생을 통해 이처럼 ‘진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삶’ 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삶을 통해 진리를 구하는 일은 어떻게 사는 일일까? 잘은 모르지만 그 일은 사람들과 얽혀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갖춘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간은 그 무엇보다 귀한 존재라 하지 않던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도 감동하는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커가는 일 앞에서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얽히고설키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깊어지게 마련이다.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기심이나 질투, 비난이나 분노처럼 인격을 상하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일 자체가 삶인 것이다. 만남의 상황 전개가 어떻게 흘러갔던지 우리를 성장하게 하였다면 결국에는 좋은 만남이라 할 수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도록 사로잡혀 있지 않을 수 있다면 그다음은 모든 것이 다 좋을 것이다. 들판의 풀꽃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제 속에 간직한 생명의 한 세대를 살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 보다 못하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맺고 푸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하며 서로 좋은 길로 가기를 기원하고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일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일이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바라며 실천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전쟁이나 박해와 같은 피의 역사도 훨씬 적었을 것이고 인류는 선한 이들이 소망하는 평화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고, 살아갈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인 마음과 또 다른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만은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럴 수 있다면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좋음과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니 다 좋겠다고 말하며 다짐해보는 것이다.


  부디 오늘도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하루'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교학상장] 진리와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