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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Jan 07. 2023

예민해서 힘든 너를 위한 편지

예민함을 긍정하기

얼마 전,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 만든 팟캐스트 '뇌부자들'에서 <예술가의 날 선 감각이 약 때문에 줄어든다면>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예술가란 그 가늘고 뾰족한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업이 되기 때문에 예술가란 직업을 가지고 모두와 잘 지내고 무던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양 두 손에 뜨거운 삶은 달걀을 들고 저글링을 하고 있는 삶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글링 하다 놓치면 깨져 민낯이 드러나기 십상인.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에게 어떤 뾰족한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에피소드의 결론은 예민함이 필요할 때는 약을 조절해가며 예민함을 다스린다는 것이었다.


예술가의 예민함은 작품의 결과로 돌아온다. 중학교 때부터 나의 최애 인디 가수는 남다르게 아름다운 가사와 코드진행을 만들어 내는 분인데,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첫 앨범을 내 고난 후 두 번째 앨범을 낼 때까지의 십오 년의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 공백 아닌 공백의(다른 가수들 곡작업은 종종 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가끔씩 하는 공연에서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다가 눈물을 쏟고 곡을 끝내지 못하고 들어가곤 했었다. 멀리서 지켜볼 때마다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대체 어디가 저렇게 힘든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그 예민함이 아름다운 곡으로 승화되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 예술가로서의 예민함은 그 결과물과 대중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통한 이해력으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예술가에게 예민함은 어떨까. 비예술가, 특히 직장 안에서의 예민하다거나 민감하다는 말은 그 안에 묘한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내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도 애썼다. 상대방의 말과 글, 표정에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농담으로 넘겼고, 내 성에 차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 깎고 다듬은 피피티와 문서들이 쉽게 나온 것처럼 포장했다. 회의시간에 내가 하는 말에 의사결정권자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 자리에서 맘에 드는 말로 바꾸기도 했고, 누군가의 말에 싸늘해진 분위기를 바꾸려 억지로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곤 했다.


결과는 좋았다. 성과도 잘 나왔고 승진도 빨랐다. 주변평판도 좋았다.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일처리도 잘하는 것이 내 장점이라 했다. 나의 예민함이 남들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고, 민감성이 사람들의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내어 그에 맞는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예민함과 민감성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예민함은 그 화살이 나와 남에게 향하지만 않는다면 장점이 된다. 예민함이 나를 갉아먹지 않게 하려면 예술가와 같은 뜨거운 삶은 계란 저글링이 비예술가에게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예민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나의 예민함 때문에 삶의 구석구석에 불편함이 많아 나를 미워했었다. 모든 곳에서 무던하게 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나의 예민함이 내 삶의 결과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예민해서 힘든 너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낸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남들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디테일까지 손을 댈 것이고, 너처럼 예리한 사람은 그 디테일을 알아챌 것이다. 무딘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지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끼는 남다름에 감탄할 것이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의 주변엔 사람이 따를 것이다. 너는 무슨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이 좋을지, 기분이 나쁠지 알고 있다. 영리하게 고르고 고른 좋은 말만 골라해주다 보면 사람들은 너를 좋아한다. 너와 일하고 싶어 하고, 너와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너는 의사소통이 서툰 어린이의 마음도 잘 알아채고, 의사소통이 거칠어진 노인의 마음을 위로한다. 남녀노소 모두 너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아름다운 것을 잘 알아볼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받는다. 아름다운 것의 의도를 잘 알아챈다. 아름다움의 정수가 너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아름다움을 알아본 너는 그걸 활용한다. 남들보다 아름다운 자신, 아름다운 창작물,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소리에도 민감할 것이다. 작은 음의 높낮이를 구별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선별한다. 연주자의 감정이 너에게는 더 깊이 가닿는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를 알아챈다. 남들의 작은 탄성도, 불평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도,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되는 소리도 알아낸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빨리 배울 것이다.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쉽게 구별한다. 남들이 바로 깨닫지 못하는 작은 차이를 구별한다. 차이를 눈치채고 이해한다. 금방 이해하기 때문에 빨리 그 차이를 수정할 수 있다. 빨리 배우기 때문에 발전 속도가 빠르다.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세상의 아름다운 면도, 세상의 어두운 면도 더 깊이 느낄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도 너는 아름다움과 공존하는 어두움을 파악한다.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정적인 뉴스들을 더 깊이 느낀다. 마음이 자꾸 약한 곳으로 흐른다. 아픔을 잘 이해한다. 너는 더 넓고 깊게 세상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예민한 너는 남들보다 아플 것이다. 너는 지쳐있다. 내 예민함으로 나의 몸을 소진하여 일터에서 돌아오면 늘 쉬어야 한다. 너는 사람이 힘들다. 사람과 만나면 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데 모든 신경의 시냅스의 리셉터를 열어두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피곤하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 안에 사는 것이 힘들다. 작은 소리에 예민한 너는 깊이 자지 못한다. 공기청정기와 가습기가 내는 작은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한다. 빨리 배우기 때문에 많은 것이 너의 일이 된다. 세상에 가득한 어두운 뉴스들이 너를 힘들게 한다. 작은 것에도 공감하는 탓에 마음 쓰는 에너지가 자꾸 소진된다. 작은 온도 차이에도 옷을 껴입거나 벗어야 하고, 잠옷과 이불의 두께가 달라지면 잠들기 어렵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러 늘 여행을 갈구하지만, 새로운 공간의 다름이 피부 깊숙이 낯섦으로 다가와 어디서든 편히 쉬기 어렵다.


너의 예민함은 타고난 선물이자 너를 괴롭히는 고통의 근원이다. 남들이 갈고닦아도 갖지 못할 능력을 너는 이미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은 너를 남들과 다르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이 예민함은 동시에 나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너무 깊이 느껴서 피부를 찢고 들어와 고통스럽게 한다. 예민함을 긍정하기 위해 좋은 점을 하나하나 파헤쳐 보면 장점 투성이다. 장점은 나의 예민함처럼 예리하게 알아채서 나열하고, 단점은 이 편지의 한 문단처럼 퉁쳐버렸다.


깊이 예민한 아름다운 너 자신을 활용하는 것은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너의 몫이다. 너의 예민함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바로 너다. 예민함이 필요할 때에는 마음껏 활용하고, 덜 필요한 곳에서는 덜 쓰는 것, 소진되지 않게 눈을 감는 법은 선물을 가지고 태어난 나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 과제의 답은 한 가지만도 아닐 것이며, 세상은 복수의 정답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예민한 너는 그 보물찾기 정답들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예민함의 양날의 검을 활용하는 방법들만 손에 쥐면 세상 그 무엇도 무서울 것 없는 검사가 될 수 있다. 이미 너는 예민함으로 깊이 세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명검을 가진 너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쉬워진다.


그렇게 나에게 주문의 편지를 보낸다.


청명검의 주인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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