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의 부작용
2주 이상의 우울감이 지속되면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지만, 가장 이 병이 확실하게 와닿는 순간은 우울증 약을 처음 받아 들던 순간이었다.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이 단발성으로 먹는 약이 아닌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 건 인생에서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약학을 전공해서 학창 시절에 이런저런 약에 대해 많이 공부했었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온갖 약들의 기전이나 임상시험 결과, 이상반응 자료 등 약과 가까운 인생을 살아왔지만 실제 내가 환자가 되어 약을 먹게 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부작용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살이 좀 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부작용이었다. 나처럼 사람들은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그래서 부작용을 겪을 때 환자들은 상당히 당황한다. 그래서 오히려 심각한 질환의 약을 만들기가 조금은 더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고지혈증의 약을 복용하는데 부작용으로 변비가 나타나면 환자들의 불만이 심해 약을 쉽게 바꾸겠지만, 항암제를 투약하는데 부작용으로 변비가 나타나면 환자들은 그 부작용보다 약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에 부작용을 참아낼 것이다. 그 부작용에 대한 받아들임의 정도는 심각한 질환에서 더 쉬운 것이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가장 처음 처방받은 약은 SSRI(Selective Serotonin Receptor Inhibitor)인 렉사프로와 DSS(Dopamin-Serotonin Stabilizer)인 아빌리파이였다. 친구 어머니가 공황장애로 고생하실 때 아빌리파이 영업사원이었던 지인에게 추천받았던 정신과 선생님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 몇 년뒤 그 병원이 어디었는지 친구와의 카톡방을 뒤져 내가 방문하게 될 줄이야. 아빌리파이 영업사원을 통해 추천받은 정신과 선생님은 아직도 아빌리파이를 좋아하시는 분이었는지 내 처방에도 아빌리파이가 들어있었다. 병원에서 렉사프로와 아빌리파이의 초기용량이 들어있는 약봉지 며칠 치를 받아 들고 집에 와서 첫 약을 복용했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이라 그런지 감기약처럼 기침 콧물이 잦아든다던지, 소화제처럼 위가 편안해진다던가 하는 증상완화의 느낌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쨍해졌다. 세상에 엄청나게 강력한 밝은 노란빛이 내리쬐는 느낌이었다. 내가 감각하는 세상이 달리진 느낌이었다. 너무 생경한 느낌이라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이틀 정도 먹어보고 상담선생님과 의사인 동생에게 상담을 했고 SSRI 만 복용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렉사프로만 복용하며 조금씩 용량을 늘려갔고 치료용량은 15mg으로 정해졌다.
렉사프로로 치료하던 시기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경험한 부작용은 5가지 정도 있었다. 렉사프로가 가장 정교하게 리셉터에 작용해서 부작용이 덜하다고 듣고 시작한 것이었는데도 약 2년간의 치료기간 동안 경험한 약의 부작용은 다섯 가지나 되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체중증가였다. 아마 우울증으로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오면서 동반해서 몸무게도 늘었던 것 같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약 6개월 만에 7kg이 쪘다. 평균보다 마른 편이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좀 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찔 줄은 몰랐어서, 친구의 집에서 체중계에 올라가 보고 나서 너무 놀라서 홍콩의 중력 가속도는 9.8m/s² 가 넘는 게 아닐까도 고민했었다. 먹는 것을 좀 조절하고 운동량을 늘렸지만, 약을 먹는 기간 내내 그전보다 약 5kg 정도는 늘어난 상태로 지냈었다. 약을 끊은 지 1년이 되는 지금, 운동량을 많이 늘리고 있는데 좀 줄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예전 몸무게까지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렉사프로는 임상시험에서는 몸무게의 증가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실제 투약하는 많은 환자들은 체중증가를 보고하고 있다고 한다. 체중에 민감한 분들은 다른 약을 고려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 느낀 부작용은 멍이 자주 드는 것이었다. 렉사프로의 허가사항에도 abnormal bleeding은 보고되고 있다. 이전에 우울증과 술에 대해서 썼던 글(https://brunch.co.kr/@mddhk/21)에서도 이야기했던 부작용인데, 어디 부딪히기만 하면 몸에 쉽게 멍이 들었고 특히 술을 마시고 나면 멍이 심하게 많이 드는 경우들이 있었다. 혈액검사도 해봤었는데, 혈소판 수치에는 문제가 없긴 했지만 지금에 비해서 확실히 멍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다. 이 abnormal bleeding은 위장관에서도 자주 발생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 위장관에서의 출혈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 번째 부작용은 잦은 위장관질환의 발생이었다. 원래도 위가 좀 약한 편이라 자극적인 음식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주 체하곤 하는데, 소화가 되지 않거나 체하거나 위염과 같은 증상이 더 자주 발생했다. 입맛이 좋아져서 자극적인 음식들과 술을 먹으러 돌아다녀서 더욱 악화되었던 것 같다. 우울증 환자에게 정말 어려운 주문이지만, 우울증 약을 먹을 때 술은 정말 줄이는 것을 권한다. 술을 마시고 다리에 피멍이 들고, 속은 속대로 안 좋을 때는 며칠을 누룽지와 밥을 섞어 끓인 죽으로 연명하곤 했었다. 그러고 나아지면 또 술을 들이붓고, 안 그래도 나약한 위장에 참 몹쓸 짓 많이 했다.
네 번째 부작용은 기억력 저하였다. 우울증 자체도 기억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나의 기억력 저하는 우울증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우울증과 약물 치료를 하는 내내 기억력 저하는 나를 꽤나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했던 대화들을 대부분 기억을 못 해서, 친구가 이사를 갔다거나 하는 사실을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을 보여 내가 우울증을 앓는지 모르는 친구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아마 매우 무관심한 인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적이 많아서 그 시절엔 일부러 기억력이 정말 안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기억력은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업무에서 웬만한 것은 잊지 않는 편이었는데,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었는지 정말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경우가 많았고, 10여 년이 넘는 회사생활에서 처음으로 논의를 했던 것은 기억을 했으면 좋겠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던 나에게는 이 부작용이 무엇보다 심각하게 다가왔다. 나에 대한 자괴감도 심해지고 새로운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서 심리적으로 더 안 좋게 만들었다.
마지막 부작용은 성욕감소였다. 기분이 처져있기 때문에 욕구자체가 잘 없기도 했지만 약을 먹으면서는 거의 욕구가 없었던 기억이다. 렉사프로의 허가사항에도 보면 libido decrease가 렉사프로 투약군의 3% 이상으로 보고된 흔한 부작용이다. 약 자체가 효과와 부작용을 통합하여 나를 재편성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분의 진폭이 적고, 많이 먹고, 성욕은 없는, 많이 먹는 두꺼운 목석같은 것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다섯 가지나 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모든 치료 결정의 기본인 위험대비 이득이 얼마나 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우울증 약을 복용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YES이다. 감정의 늪의 구렁텅이에 붙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던 시절,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였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약을 먹었던 시절은 그나마 숨 쉴 수 있고, 살기가 편안했던 시절이었다. 약을 끊은 지금 가끔 기분이 다운될 때면 약을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때는 약을 먹자.
내가 약을 먹는다고 고백했을 때 주변의 수많은 친구들이 자신도 약을 먹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현대 사회에서 평생 우울증 약 한번 먹지 않고 살아내는 것은 보통 강철 멘탈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확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약물로 혜택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의 부작용 case를 소상히 나열해 보았다. 우울증 약물치료를 고민하는 누군가 혹은 약물 부작용으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