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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Jan 29. 2023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제목을 몸부림으로 적었지만 몸부림엔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몸부림을 칠 수 있는 상태까지 에너지를 올리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우울증 치료가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우울증 약의 이상반응으로는 자살이 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어떻게 자살을 할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중증의 우울증은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에너지가 없는 상태이다. 우울증 약을 먹고 우울증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이제는 누워만 있는 것 외에 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삶은 죽을 것 같이 괴롭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으니 스스로 삶을 끊어보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우울증이 한창일 때는 삶과 죽음 그 두 가지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다. 내 삶은 현재도 회색빛이고 미래에도 나아질 것 같지도 않지만 죽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통해 예전보다 삶에 대한 약간의 긍정이 생긴 이후에는 이 거지 같은 우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들을 이것저것 실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 본 것들을 수첩에 나열해 보고 내가 노력이란 걸 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 약물치료, 명상, 요가, 각종 심리검사들(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검사들, TCI, 애니어그램), 일기, 브런치에 우울증에 대한 글쓰기, 철학공부, 감각 관찰, 정신건강 관련 유튜브 보기, 마음 건강 책 읽기, 최근에 꾸준히 시작한 달리기와 사주와 점성학까지. 고생했다며 엉덩이 팡팡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나열하다 보니 이 수많은 노력들이 몇 가지 범주로 묶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알아가기, 병을 알아가기,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는 기술적인 방법들. 그중 가장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 나를 알아가기 위해 했던 방법들에 대해 써 본다.


나를 알아가기

감당하기 힘든 번아웃이 처음 찾아왔을 때, 내가 취했던 가장 큰 방법은 심리 상담을 시작한 것이었다. 심리 상담에서 우울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작업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말해보게 하고 그것을 감정일기로 적어보라고 권한다. 내가 어떤 마음이 드는지 깨닫는 것이 시작이다. 나의 감정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 수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주로 '불편해요'라는 대답을 했었다. 화가 났는지, 짜증이 났는지, 슬펐는지 내가 느낀 감정을 '불편해요'라고 뭉뚱그리는 데에 익숙했다.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세상에 수많은 감정표현이 있음을 검색을 해보고 깨달았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감정들이 적혀있는 단어 모음을 앞에 두고 마음과 단어를 매칭시켜 보곤 했다.


그러고 나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데 여러 심리 검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정신건강 의학과에서 하는 MMPI나 문장완성검사 같은 것을 통해서 내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지, 현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질과 성격의 다른 점을 설명해 주시며, 나는 기질상 우울증을 안고 살 확률이 높다며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우울증은 인생에서 계속 찾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성격이 바뀌기는 하는 건가. 절망적이라고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기질은 타고나길 변하지 않는 것이고, 성격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져 바꿀 수 있는 것이라 하셨다. 그때 나는 기질과 성격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고 나의 기질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검색 끝에 TCI라는 기질 검사를 알아냈고 약간의 돈을 내고 비대면 검사와 상담을 신청했다.


검사 결과 나는 강한 위험회피성향이었다. 걱정이 많고 늘 조심하기 때문에 사는 데에 피로감이 매우 높다는 것. 다행인 것은 후천적으로 성격이 자율성과 연대감이 높게 형성되어서 위험회피 기질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기질과 반대되는 성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면 굉장한 유물론자로 영적인 수용이나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 같은 것은 심각히 부족하므로 이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 의식적, 의도적으로 나의 논리적 성향을 벗어나 보려고 노력해 보곤 한다. 항상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 만을 믿는 태도를 견지해 왔는데 나와 달리 영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유물론은 상당히 합리적 이어 보일 수 있으나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언젠가 어떤 것으로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과학적 심리검사가 아닌 것들도 나를 알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애니어그램이나 사주, 점성학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리학과 점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인 덕분이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언니와 일주일을 보내며 나의 사주와 점성학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기간은 나의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태양과 같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성향과 남들의 감정을 쉽게 공감하고 남들에게로 흐르는 성향이 반대되어 나를 쉽게 소진시키고, 본인 자체는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함을 달고 산다는 것. 바운더리를 그을 필요가 있다는 것. 결국 나 자신이 태양과 같이 빛나기 위해선 나 자신을 알고 돌보는 것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었다.


철학책들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우울증에 무슨 철학책까지 읽어야하나 싶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한 방법이었다. 철학책을 수십권을 읽은 것도 아니다. 손에 꼽히게 몇 권, 쉽게 씌어진 것으로 읽었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는데 나는 너무나 둔했다. 호기심으로 궁금증은 해결해야만 하는 친구도 있던데 나는 궁금해도 참는 버릇을 나에게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세상에 쓰이기에 최적화된 응용학문을 전공하였는데 이것이 20대 초반의 나에게 나를 돌아보는 과정을 방해했다는 생각을 한다. 왜 젊을 때 철학을 공부하라고 하는지 이제야 이해한다. 나를 아는 작업을 일찍 시작할수록 나머지 인생이 수월해진다는 것을. 나를 알지 못한 채 나를 실용적인 인간으로 만드느라 바빴던 나의 이십 대는 30대 초반까지도 나를 허무와 염세에 빠져있게 만들었다. 나의 염세를 이해하려 이제야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이렇게 생을 지낼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에리히 프롬을 읽으며 나의 버릇과 같은 불안이 왜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랑에 대한 관점도 바뀌게 되었다. 수동적으로 기대하는 운명적인 사랑에서 나를 이해하는 것을 통한 적극적인 형태로 선언하는 사랑.


마지막 방법으로, 나의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나는 참 예민한 사람이다. 잠귀가 밝아서 옆사람의 코골이와 뒤척임은 물론 가습기와 에어컨 소리에도 잠들기 어렵다. 여행을 가서 잠자리가 바뀌면 그 잠자리에 익숙해지는데 적어도 3일의 시간은 필요하다. 3일 이상 머무는 경우가 잘 없으니 여행을 가면 대체로 잠을 못 잔다는 얘기다. 온도에도 예민해서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25도와 26도 사이 적정 온도를 찾아 엄지손가락이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분주하다.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의 잠옷을 입지 않으면 팔이 아려서 푹 자기 어렵다. 맥주와 같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음식이나 냉면과 같이 물리적으로 온도가 낮은 음식을 먹으면 바로 위가 운동을 멈추는 것이 느껴진다. 옆 사람의 향수냄새는 하루종일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여러 예민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민감한 나를 스스로 프로불편러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예민함을 후려쳐 둔한 감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잠귀가 밝고 온도에 예민한 나를 위한 거주 환경, 잠자리 환경, 업무 환경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내 몸을 아프게 만드는 음식을 줄여나가니 고질적인 위장장애로 고생할 일이 적어졌다. 나의 감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니 나를 부정적 형태로 자극하는 것을 오히려 줄일 수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게으름은 나를 누워서 남의 생을 들여다보는 유튜브나 sns에 흘러 다니게 만든다. 그 흐름을 끊고 나만을 마주하는 작업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우울증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절실해지는 순간 노트와 펜 하나를 들고,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작업을 해보게 된다.



이미지 출처: Know thyself, Roman mosaic.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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