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의 끝에서 마주한 거울

수상한 그녀 x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신재


2014년 새해, 집에만 계시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오랜만에 극장으로 이끈 한국영화가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스무 살 처녀 적 시절로 돌아가게 된 칠순 욕쟁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수상한 그녀’이다. 착실히 웃기면서도 가족 영화답게 적당히 감동적이고 적당히 교훈적인, 어찌 보면 한국형 코미디 드라마의 뻔한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이 영화. 예고편만 보아도 전반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훤히 예상이 되는 듯싶지만 ‘수상한 그녀’의 진짜 매력은 배우들의 깨알 같은 연기력과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는 센스 넘치는 연출력, 그리고 같은 장면도 더 아름답게, 더 감동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적소 적절한 촬영기법에 있을 것이다.

<수상한 그녀> 영화 스틸컷


물론 스크린을 보는 관객들의 엉덩이도 함께 들썩이고 싶게끔 만드는 주옥같은 수록곡들도 빼놓으면 섭섭할 테고. 오프닝부터 유쾌하게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다가 영화 끄트머리 즈음 가서는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진한 감동과 함께 우리 어머니들이 얼마나 힘들게 자식들을 키워왔는지, 자식과 부모 간의 도리와 사랑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때마침 맞물린 설 연휴, 부모님과 함께 찾은 극장에서 가족애를 돈독히 쌓기에 더없이 적합한 영화이니 850만 돌파라는 흥행 쾌거를 이룬 것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앞서 늘어놓은 장황한 설명을 한마디로 함축하자면 ‘수상한 그녀’는 감동과 웃음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그리고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이 앞세워진 유쾌한 코미디 가족 영화-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마 감독은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까지 영화 안에 슬그머니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난히 눈에 띄는 짙은 붉은색 표지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책을 두 번씩이나 은근슬쩍 화면 안에 끼워 넣었을까. 지하철 안에서 방송국 PD인 승우(이진욱)의 손에 들려 읽히고 있던 이 책은, 나중에 주인공의 아들인 반 교수(성동일)의 책상 위 책꽂이에 살포시 기대어져 있기도 하다. 이를 알아챈 관객들에게 감독은 한 마디 대사나 진부한 내레이션 없이도 슬며시 머리 아픈 명제를 제시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과연 존재하는지’ 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스틸컷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원작 책 혹은 그보다 더 유명한 영화 버전으로 접해 본 이라면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볼 만하다. 노인복지와 관련된 교훈적 이야기 대신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제목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이 시는 지혜와 영혼의 상징인 ‘노인’들이 관능과 쾌락으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의 유한한 세계에서 떠나 초월적인 영원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책에서 표현하는 ‘노인’은 상식적이며 지혜롭고,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통찰력과 합리성을 가진 주체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들의 편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하며, 지나치게 냉정하고,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상한 그녀’에서 보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젊음’ 하나로 인해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도 생기고, 멋진 남자와의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반면 늙은이의 사랑이나 욕망은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변한 것은 겉모습뿐인데 사회의 태도는 180도 바뀐다. 씁쓸하지만 기꺼이 웃어넘길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성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편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희극과 비극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과연 노인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혹 타성에 젖어 노인의 움츠린 어깨를 너무도 당연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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