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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걸 Apr 07. 2024

이놈의 된장

밥상 뒤집고 싶던 어느날


2024년도 4월 첫주 주말 네 가족이 다시 만났다. 몇달만인지 모르겠다. 아들이 군대에 가고 딸은 고등학생이 되고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오다보니 평일엔 거의 각자 식사를 하고 주말에도 두끼 정도만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를 했다. 같이 밥을 먹어야 정도 쌓이고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텐데 벌써부터 이렇게 각자 생활을 하니 아이들이 독립게 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마음이 아리다.


아들이 군입대후 100일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이라서 남편도 집으로 왔고 네명이서 같이 봄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며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안하던 쇼핑과 외식을 하자고 한게 화근이었나보다. 이번주에 수련회에 다녀온 딸이 피곤하고 자신은 쇼핑가고 싶지 않다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군인답게 어른스러워져서 가족이 함께 한다면 뭐든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짜증을 부리며 화를 내던 딸이 학원 보강수업도 가기 싫다고 학원에 전화를 해 달라고 했다. 학원엔 하루 쉬기로 연락을 취했지만 남편은 가족모두와 함께 하길 바래서 몇 번 더 설득하다 싸움으로 번졌다. 이걸 지켜보며 중간에서 조율하다가 나까지 화가 났고 집안 공기는 그야말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외식은 없었던 일로 취소되었고 딸과 아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속상한 나머지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 누웠다.


한참이 지났을까? 엄마 마음을 풀어주려고 아들이 방에 왔고 휴가나와 잘 해주고 싶었던 나는 함께 장을 보러가자고 했다. 소파에서 잠이 든 남편을 데리고 셋이서 마트에 갔다. 오랜만에 사제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들이 먹고 싶다는 걸 한 가득 담아 집에 왔다. 집에 오자 마자 나는 분산하게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꼬막무침을 시작으로 봄나물등을 활용해서 냉이된장찌개와 돗나물무침, 메추리알조림, 불고기 등 한 상 크게 차렸다.


상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리 분주히 움직이는데 남편이 화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만 있다. 딸방에 들어갔는데 딸이 이번에도 짜증을 낸 모양이다. 속상한 건 알겠지만 화난 채로 앉아만 있는 남편얼굴을 보고있자니 나까지 기운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상을 다 차리고 밥을 먹자고 불렀는데 아들만 상에 앉았다. 남편은 바로 옆에 있는데 대답도 없고 오지 않는다. 남편은 딸을 불렀고 딸은 짜증을 부리며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남편은 더 화가 나서 얼굴을 구기며 소파에 앉아만 있다. 나랑 아들만 둘이 수저를 들었다. 몇 숟갈 밥을 먹는데 아무런 대화도 없는 이 분위기와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밥 한번 먹어 보겠다고 노력했던 내 마음이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밥을 차려도 오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고 상을 뒤엎고 싶었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예전에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들이 가만히 있다가 상을 뒤엎던 이유가 이런 답답함이 폭발해서 였겠구나 하는 공감이 들었다.)


냉냉한 분위기를 깨고 가족을 위해 엄마로서 남편기분도 풀어주고 딸방에 가서 밥을 같이 먹자고 달래야 하는 것이 어머니라서 가정안에서의 내 역할이지만 이제 다 큰 아이들과 남편이 집안일 하며 주중엔 일하러 다니는 나에 대한 배려는 왜 안 하는지 서운했다. 된장찌개를 바라보며 마음 속에서 욕이 나왔다.


'이놈의 된장!'


밥은 몇 숟갈 먹지도 않고 나는 방으로 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꽉찼다. 아내가 화가 나도 곁에 와서 달래주거나 말한마디 걸지도 않는 남편에 대한 서움함이 온몸에 가득찼다. 그와 함께 다들 힘들구나 하는 안쓰러움도 들었다. 하루하루 고단했을 것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그러니 서로 위로해주고 더 보듬어주어야한다. 그런데 난 엄마인데 왜 이런 보듬의 말과 행동이 부족할까? 항상 바쁘셨던 부모님 아래서 독립적으로 자랐던 나의 유년시절 때문일까? 아니면 각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밤이 깊어질때까지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기 싫어 나는 어제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바로 보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더 깊게 고민하고 있다. 다시 아침이 밝으면 각자의 자리에서 바빠진다. 우리 가족은 언제 다시 만나 이 일을 다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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